빨래를 한다.
얼룩 제거제를 손에 쥐고
세탁기 앞에 서서 흰 셔츠를 뒤적거린다.
분명 셔츠 왼쪽 아래에 얼룩이 있었는데
안 보인다.
한참을 애쓰다가 지쳐
베란다 창으로 드는 해를 등으로 가려본다.
얼룩이 보인다.
기름얼룩이 동그랗게 거기 있다.
그늘에서만 보이는 것이 있다.
태양 아래서만 보이는 것도 있지만.
엄마 흰눈썹을 뽑아줄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빛 때문에 흰눈썹이 사라져 버렸다.
나의 흰머리는 밝은 태양빛에서 보였다.
지상의 빛줄기가 떨어지던 지하철역 전신 거울 앞에 섰을 때
긴 흰머리가 하얀 기둥처럼 거울 안에 있었다.
그것을 뽑으면서 생각했다.
염색을 몇 번이고 하는 동안 이것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왜 나는 이렇게 길어질 때까지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나.
밝은 태양 아래의 거울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내 얼굴을 제대로 처음 본 것 같았다.
밝은 곳에서만 보이는 내 안의 무언가가
그날 얼핏 보였던 것 같다.
하얀 머리칼을 손으로 골라내며 당기기 전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햇빛에서만 보이는 게 있고
그늘에서만 보이는 게 있다.
그러니 네가 찾는 그것이 안 보이거든
반대의 장소로 한번 가보아라.
빛이 말해주지 않았던 그것은,
어둠이 말해주지 않았던 그것은,
반대이자 하나의 세계 속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