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결

2025년 11월 1일(토)

by 달빛라디오

토요일 아침, 유난히 분주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머릿속은 이미 여러 일정으로 가득했다. 사당역 근처, 한 공간대여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평가사 스터디’가 첫 일정이었다. 지하철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다시 해보자. 이번엔 정말로 끝까지 가보자.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공부였다. ‘바쁘다’, ‘타이밍이 아니다’ 같은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시간도 길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은 그렇게 조용히 찾아왔다. 인터넷 카페에서 스터디 모집 글을 보고 주저 없이 연락을 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이라는 점이 든든했다. 그들의 진지한 눈빛 속에서, 나도 마음을 다잡았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내년 이맘때쯤엔 웃고 있기를. 그렇게 스스로에게 조용히 약속했다.


스터디를 마치고 의정부로 향했다. 교회 형님의 아들과 친구 누나의 딸이 결혼하는 날이었다. 전날 밤엔 바람이 차서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하늘이 한없이 맑았다. 햇살이 고택의 기와를 반짝이게 하고, 신부의 드레스 위에 내려앉은 빛이 참 따뜻했다. 양가 가족의 웃음이 이어졌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각자 쌓은 시간들이 오늘 하나의 ‘가정’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두 사람이 서로의 인생을 걸고 ‘같이 걷자’고 말하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축복이 모이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짧게 기도했다. 이들의 길 위에도 햇살이 늘 함께하길.

촬영 후 AI로 그린 이미지 압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서울역 근처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온 대학 동기를 보기 위해 친구 몇 명이 번개로 모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우리는 금세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소주잔이 몇 번 오가자 자연스레 인생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느새 다들 쉰을 바라보는 나이, 젊은 날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묵직한 현실이 채우고 있었다. 한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회사에서 이번에 그만하라고 하더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이었다. 그는 담담하게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엔 오래 묵은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어깨가 왠지 더 작아 보였다.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괜찮아, 친구야.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어디냐.


하루가 길었다. 공부로 시작해, 축복으로 이어지고, 우정으로 마무리된 하루였다. 각기 다른 만남 속에서 나는 공통된 마음 하나를 느꼈다. 다시 시작하는 용기. 그것은 공부를 다시 붙잡는 나에게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신혼부부에게도, 삶의 방향을 다시 잡으려는 친구에게도 똑같이 필요했다.


밤이 깊어 서울역 불빛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천천히 걸었다. 오늘 하루의 온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쩌면 인생은 이런 날들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분주하지만, 그래서 더 살아 있는 하루.

그리고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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