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4일
어제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성탄 전야인 오늘까지도 보슬비로 바뀌어 그칠 기미가 없다. 겨울이라기엔 무색할 만큼 포근한 공기 탓에, 하늘에서 내려오던 결정들은 눈이 되는 법을 잊은 채 투명한 빗방울로 몸을 바꾼다. 어제 늦은 오후 창문에 부딪혀 미끄러지는 물줄기를 보며 나는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붉은 색 영롱한 히비스커스 찻잔을 감싸 쥐었다. 사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멈춰 서는, 그 완벽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눈 대신 찾아온 이 비가 전하는 이야기가 꽤 다정하다. 눈이 세상을 조용히 덮어버리는 '침묵'이라면, 비는 세상의 낮은 곳을 두드리며 안부를 묻는 '대화'다. 창틀을 때리는 규칙적인 리듬, 지붕을 타고 내려가는 물소리, 그리고 젖은 아스팔트 위를 지나는 차들의 낮은 마찰음까지. 평소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 소리들이 비어 있는 방 안을 따스하게 채운다.
'눈이 아니어도 괜찮아. 오히려 이 소리가 더 외롭지 않게 해준다.'
혼잣말을 내뱉으며 창가로 더 가까이 다가앉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도시는 성탄의 불빛으로 분주해질 것이다. 우산을 받쳐 쓴 연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상점마다 흘러나오는 캐럴은 빗소리와 섞여 묘한 화음을 만들어낼 테다. 눈이 내렸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 고요했겠지.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형식보다 중요한 건, 오늘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다정한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세상이 하얗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 비는 메마른 겨울 나무의 뿌리를 적시고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녹여준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기억에 남는 '미완'의 풍경.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따스함은 그 어떤 눈송이보다도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는다.
이 비가 그치지 않기를, 그래서 오늘 오후까지도 이 다정한 안부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남은 차를 한 모금 머금는다.
모든 소망이 하얗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어두운 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