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김한빈
우리는 성지(聖地)를 찾아 떠나리
한 줌 물로 영혼을 씻기 위해 낙타를 타고 떠나리
이 밤 어디선가 우리의 어리석음을
죽비로 꾸짖는 스승을 찾아 떠나리
거리엔 황홀한 불빛들
밤을 지키는 성벽 파수병들
드디어 스승은 주장자(柱杖子)를 울리는구나
무릎 꿇은 낙타여
아, 슬퍼하지 말아라
신기루 사라진 모래 언덕 너머
불 밝힌 오아시스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날이 새기 전
한 모금 목을 적시리
어디선가 낯선 바람이 불어오고
사자 울음소리 들리는구나
놀란 늑대 무리들아, 흩어져라
어느 선지자가 길어온 샘물을 마시고
우리는 아이로 다시 태어나리라
<문장 21>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