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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Nov 12. 2017

“문명의 충돌인가”

 “문명의 충돌인가”

                                                           김한빈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 연쇄테러로 인해 130여 명이 희생되었다. 우리나라와 동떨어진 유럽 지역의 사건이지만, 강 건너 불로 바라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이슬람국가가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한 나라에 한국이 포함될 뿐 아니라, 테러 발생 가능 지역에 많은 우리 교민들과 여행자들이 있어 그들의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종교적 기반이 다른 기독교 서구문명과 이슬람 아랍문명 간의 충돌로 간주하는 시각이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진영과 공산진영의 냉전이 1990년대 초에 막을 내리고, 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여러 상이한 문명 간의 충돌을 예상한 하바드 대학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민족주의 분출로 인해 내전이나 국가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 테러를 문명간의 충돌로 보는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사태는 서구와 아랍 전역에서 일어나는 지역적 포괄성을 띠지 않고, 아랍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이슬람국가(IS) 테러를 비난하고 있고, 심지어 이슬람국가(IS)는 수니파 중심의 무장투쟁단체로 시아파를 적대시하고, 아랍지역 내 민간인들도 살상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 방안을 폭력에 의존하는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폭력을 단호히 반대하면서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지로 확산되자 시리아의 현정권은 민주 시위에 참여한 자국민들을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30만 명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반정부 세력이 무장하여 내전으로 격화되면서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이슬람국가(IS) 지하디스트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본거지에서 지중해 연안 아랍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방과의 투쟁을 ‘성전(聖戰, 지하드)’으로 호명하며,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미국을 ‘악의 제국’으로 비난한다. 그들은 결국 수세기에 걸친 서구의 침탈에 무력으로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의 왜곡된 동양관을 비판하면서 탈식민지 담론을 주창했다.  ‘서구=문명, 동양=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동양’은 아시아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주로 아랍 지역이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의 중동을 말한다. 서양인들의 동양(오리엔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형성된 것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아랍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퇴조하고, 서구의 르네상스 발흥 이후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전, 시장경제의 활성화 등으로 서구세계가 인류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서구열강들은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했다. 미개한 동양을 문명개화시켜주고, 근대화로 이끈다는 시혜의식을 가지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서구로 유학 가서 서구의 제도를 모방하고, 이를 통해 자국의 피식민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면서 그들은 상당한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구열강과 달리 자국민들이 미개하다는 열등의식이 형성되고 이것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내면화되고 전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서구의 왜곡된 동양관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서구에 의한 왜곡된 동양관’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자유, 평등, 인권, 개인의 행복추구권 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서구세계가 선점하여 서구화는 곧 근대화라는 등식을 생산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 만연한 ‘왜곡된 동양관의 내면화’는 세계정세를 서구의 편향된 시각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유럽은 난민 수용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유럽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노동력이 점점 줄어들어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될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극우세력들의 반발과 주류문화에 편입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주체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어 남의 일이 아니다.



<오륙도신문>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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