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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Dec 26. 2017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온 편지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온 편지

                                                                김한빈



그리운 알료샤

그동안 잘 있었니? 수도원 생활은 어때, 편안하니?


나는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얼음덩어리 잉크병을 가슴에 품고 지난밤을 새웠어. 여기 시베리아 유형소는 동토의 지옥이야. 그러나 봄이 오는 소리를 희망처럼 느낄 수 있어. 가장 추울 때부터 동장군도 서서히 물러가지 않니. 그건 정말 기적같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독감을 심하게 앓았지. 내 마음속엔 세상이 다 얼어버린 듯한 억울함과 손가락 을 깨무는 원망뿐이었어. 거의 미칠 지경이었지.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했어. 그때 죽음의 환영을 보았어. 저승사자가 긴 복도를 걸어오는 소릴 들었지. 너도 알다시피 난 아버지의 살해범이 아냐. 스메르자코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진실이 대낮처럼 밝혀졌을거야. 법정에 섰을 때 내 정신이 아니었어. 내가 어떻게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단 말이냐. 그건 운명적인 부조리였어. 


나의 여인 그룬센카는 나에게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어. 그건 나의 불같은 사랑에 대한 보답인가 봐. 불쌍한 그룬센카. 내가 한사코 말렸는데도 소용 없었어. 이 편지도 그녀 덕분에 너에게 무사히 전달될거야. 간수 한 명을 입속의 혀처럼 매수했거든. 이제 몸도 예전처럼 회복되고 다시 건강해졌어. 사실 이 모든 일들이 다 내탓이야. 아버지의 죽음, 스메르자코프의 자살, 그룬센카의 고생 등. 


사랑하는 알료샤, 

그런데 억울한 심정이 물속에 가라앉고 나니 오히려 속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우랄산맥처럼 솟아올랐어. 그것이 내 영혼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깨달았어. 이 시베리아 유형 생활이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지. 이 편지를 통해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어. 손이 너무 얼어서 더 쓰기가 어려워. 그럼 이만


너의 진실한 형 드미트리가


추신:

이반에게 안부를 전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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