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
김한빈
바람고개 넘어 사자봉 건너
산이 쌓아올린 그 높이에 오른다
푸른 편백 숲이 곧게 서서
장대비 맞고 때론 눈바람 쐴 때
산은 그 높이를 묵묵히 쌓아올렸다
내가 올라온 길
누가 이끈 듯 꿈결 같아도
몇 갈래 길과 그 높이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는다
산다는 건 어떤 길을 걸어도
산이 쌓아올린 그 높이에 오르는 것
결국 산의 그 높이가 문제다
만일 다른 길로 왔다면
찬란한 아침 해를 보거나
핏방울 스민 저녁놀을 보거나
더 굽이치는 길을 따라
그 높이에 닿았을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어떤 길을 걸어도
산이 쌓아올린 그 높이에 오르는 것
결국 산의 그 높이가 문제다
오는 길에 언뜻 들었을까
대숲 옆 산절 마당에
흰 구름 흐르는 소리
하산길에 들을 수 있을까
산이 그 높이를
스스로 낮추는 소리
<문학도시> 2017년 9월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