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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Feb 02. 2018

철학자 임금 차나키아

철학자 임금 차나키아

                                                       김한빈



 옛날 옛적에 인도의 철학자 임금 차나키아에게 그의 제자가 물었다. 이승에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임금은 대답 대신에 명령을 내렸다.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 그것을 머리에 이고 어느 축제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 속을 지나가되 물동이의 물을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그리하여 그 제자는 무사히 명령을 수행하긴 했는데 머리 위에 놓인 물동이만 쳐다보며 장님처럼 더듬더듬 걸어서 돌아왔다. 임금이 그 제자에게 물었다. 그날의 축제가 어떠하더냐고. 하지만 그 제자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에 이런 삽화가 있다. 


 ‘이승에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는 말엔 여러 가지 함의가 담겨 있겠지만,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머리 위에 놓인 물동이만 쳐다보며 장님처럼’ 살아서는 인생의 축제를 즐길 겨를이 없다. 임금의 명령을 수행하기 급급한 제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이 처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최근 국정 감사를 통해, 지난달 서울시청 7급 공무원이 ‘일이 많아 업무 힘들다.’고 투신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죽도록 일한다”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과로(過勞)사회'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 많은 수치다. 1년간 독일보다 4.2개월, 미국보다 1.8개월 길다. ‘가로시(Karoshi․ 過勞死)’는 과도한 일로 심신이 모두 소모돼 죽음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다. 이 용어로 전세계적인 이슈를 만든 일본보다 394시간 많다. 과로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제대로 인식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 ‘장시간 노동’이 화두가 된 지 오래됐다. 매년 노동시간 단축과 고효율 경영을 강조해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과로사와 자살 소식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노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시사해준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비율은 2014년 기준 유럽연합의 5배다. ‘과로질환’으로 볼 수 있는 뇌, 심혈 관계 질환으로 산업재해 처리를 받은 사람이 연간 630여 명에 이르고 이들 가운데 약 46%가 사망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17일 직장인 1,486명을 대상으로 야근 현황을 조사한 결과, 무려 78.9%가 야근한다고 대답했다. 한편, 지난 12일 한국생산성본부가 국내 대기업 800여 곳, 중소기업 6만 5,000여 곳을 조사한 결과 2015년 국내 기업들의 노동생산성은 OECD 35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고령인구가 많은 일본과 비교해서도 77% 수준이다. (서울경제 참고) 


 2013년 미국의 유명만화 사이트 ‘도그하우스다이어리’에서 공개한 세계지도, 세계은행과 기네스북 데이터 등 객관적 자료로 만든 ‘국가별 선도분야’ 지도엔 일본은 로봇, 중국은 탄소배출 선도 국가로 지정됐고 한국은 '일중독자들(Workholics)'이라고 표시됐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간한 ‘과로사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월간 10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시키는 기업이 전체의 12%에 이르고, 월간 80시간 이상 시간의 근무를 요구하는 기업은 전체의 28%였다.


 특히 청년층의 과로는 심각하다. 지난 5월 열린 2017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대졸 청년층의 근로시간'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평균 주간 노동시간은 44.7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보다 1시간가량 많은 하루 평균 8.94시간씩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2331시간이다. (매일경제 참고)


 국제사회조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국가관, 노동관을 분석한 결과, 미국은 ‘자아실현형’, 프랑스는 ‘보람중시형’, 일본은 ‘관계지향형’이지만, 한국은 ‘생계수단형’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청년 노동자들이 ‘생계’라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평생 살아간다면, 어느 때 인생의 축제에 참여하여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누릴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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