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전체주의
김한빈
최근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각국 정부의 행태에서 전체주의적 요소가 발견된다. 공동체 위기라는 특수 상황이 전개되면 개인의 자유는 유보되고 공권력은 사회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한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소외된 대중들이 소속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집단에 가입하여 개인의 자유를 버리고 전체주의 집단에 귀속되는 현상을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분석했다.
세계적 경제 침체 분위기 속 치명적인 전염병의 창궐이 시민들의 생존 위기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공포는 시민으로 하여금 공권력의 강력한 통제를 자발적 동의와 협력으로 수용하게 하고, 각 정부의 대응 방식은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를 닮아간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각 정부가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체주의적인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국제비영리법률센터(ICNL)는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각국 정부의 법률적 조치가 국민의 자유와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국제비영리법률센터에 따르면 현재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는 68개국이다. 이 중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9개국이다. 국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국가는 11개국이고, 집회 등에서 규제를 도입한 국가는 무려 72개국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은 정보기관에 개인의 정보를 법원 영장 없이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헝가리의 비상사태 조치와 터키의 소셜미디어 통제 법률, 동유럽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비상조치는 초헌법적이다. 남미 볼리비아는 이번 사태를 정적 제거에 활용하고 있다. 동남아 캄보디아는 비상사태 시 국가 통치 특별법을 제정했다. 태국에서도 소셜미디어 통제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정부가 보건 위기를 앞세워 코로나19와는 무관한 새로운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 문제는 이런 권력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라리 교수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이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간조선 참조)
코로나19 대응방식을 통해 국가별로 유형화하면 세 가지다. 첫째, 중국·러시아 등 기존 권위주의 국가들의 감시 권위주의(surveillance authoritarianism)로의 진화, 둘째, 그동안 경제 양극화와 포퓰리즘 정치로 멍들었던 서구 자유주의의 대혼란, 셋째, 바이러스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한국·대만 등의 스마트 개입 국가다. (중앙일보, 장훈 칼럼 참조)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유형인 중국·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감시 권위주의 국가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서구 자유주의가 갖추지 못한 비상사태 대응 능력을 보여 왔다. 골목마다 1차 병원, 수만 개의 약국, 곳곳에 포진한 보건소, 국민 의료보험에 힘입어 우리는 감염 의심자의 빠른 검사와 동선 추적, 접촉 경로 파악과 정보공개를 기반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있다.
방대한 보건 행정 인프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민간의 협업이 보건 전쟁 시기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국을 통한 공공 마스크 공급, 전국의 약국별 마스크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앱의 민간 개발, 여기에 네이버·KT 등의 클라우드·웹서버 무상 지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위 글 참조)
현대사회는 전자적 감시와 통제 사회이다. 공동체 위기 상황에서 디지털 전체주의가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지금의 코로나19가 극복된 뒤에 각국 정부의 시민 통제 시스템이 지속될 위험이 있다. 4월 말 우리 정부는 완곡한 표현으로 ‘안심밴드’라는 자가격리 중 이탈자 전자팔찌 착용을 시행했다. 이것이 코로나 이후 시대에 새로운 통제의 수단으로 확대 활용될 수 있다.
<오륙도신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