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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Jul 07. 2020

‘황령산’

황령산

                                                   김한빈

     


 산을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산이 거기 있어서 산을 오른다’는 초모랑마(에베레스트)에서 숨진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답변은 유명하다. 전문 등산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네 응답은 무엇일까. 부산 남구 도서관에서 오솔길로 황령산을 오르면 차량이 내는 소음이 한순간 사라진다. 대신 새소리와 함께 숲속의 나무들 소나무, 벚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나무, 잡목 등이 일어서서, 정상을 향해 개미처럼 기어오르는 등산객을 허리를 굽혀 맞아준다.

 

  멀리서 바라본 황령산 ‘사자봉’(해발 400m)의 자태는 언제나 늠름하고 웅장하다. 문현동의 돌 지붕처럼 머리를 들고 부산항을 바라보는 사자봉은 푸른 편백 숲의 고요를 깨고 포효하면 남구는 물론 진구, 동구까지 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다. 지도 상엔 엎드린 산들이 우뚝우뚝 솟는다. 네 개 작은 고개를 넘어, 동천고와 문현동, 경성대나 남구 도서관, 대연동 장산 아파트 등에서 올라온 길이 하나로 만나는 삼거리 정자 앞에 다다르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다음 단계의 목적지는 ‘바람고개’이지만, 또 고개를 넘어갈 것이냐, 평탄한 임도를 걸어갈 것이냐. 


 언제나 ‘갈미봉’(해발 263m)을 오른다. 여름철엔 뻐꾸기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반갑게 맞아준다. 땀이 수건을 적신다. 그러나 여기가 1차 고비다. 왜 산을 오를까, 자문해본다. 배낭을 놓고 서성이던 산문 밖이나 몇 방울 땀으로 오른 중턱에서 바라봐도 산꼭대기 마지막 오르는 길은 산이 짙은 숲의 침묵으로 파수병처럼 지키고 있다. 갈미봉 정자에서 숨을 돌리고 이내 바람고개로 내려간다.


 황령산 유원지 안내판이 설치된 바람고개 정자에 잠시 앉아 기둥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목을 축인다. 이곳은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중간 집결지이다. 여기서 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사자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목제 계단 길과 봉수대로 향해 비스듬히 오르는 길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길은 갈라져 있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사자봉으로 오르는 길이 경관이 더 좋다. 부산항과 부산대교, 멀리 영도 섬까지 남구와 수영구에 펼쳐진 수많은 아파트, 광안대교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하늘이 언뜻 산등성이 위로 출렁일 때 저 광야에 외로이 걷는 무소의 뿔처럼 한 걸음 나아가면 산은 비로소 보여준다. 산정 오르는 마지막 길을. 개미같이 스멀스멀 기어서 산의 무릎이며 배꼽이며 가슴까지 오르다가 드디어 산 정수리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수많은 산봉우리가 짐짓 머리를 숙인다. 정상에 오른 노고에 경배를 바친다. 사자봉이나 황령산(해발 427m) 표지석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진 세상을 바라본다. 높낮은 봉우리들, 크고 작은 수목과 바위들이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을. 


 황령산은 편백 숲이 곧게 서서 장대비를 맞고 때론 눈바람 쐴 때, 산은 그 높이를 묵묵히 쌓아올렸다. 내가 올라온 길, 누가 이끈 듯 꿈결 같아도 몇 갈래 길과 그 높이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는다. 산다는 것은 어떤 길을 걸어도 산이 쌓아올린 그 높이에 오르는 것이다. 결국 산의 그 높이가 문제다. 만일 다른 길로 왔다면 찬란한 아침 해를 보거나 핏방울 스민 저녁놀을 보거나 더 굽이치는 길을 따라 그 높이에 닿았을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어떤 길을 걸어도 산이 쌓아올린 그 높이에 오르는 것이다. 결국 산의 그 높이가 문제다. 


 산의 그 높이는 물리적 높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속의 부와 권력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삶에 대한 인식의 높이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산을 오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산의 그 높이를 묵묵히 쌓아올린다는 것이다. 


 산정 오르는 길에 언뜻 들었을까. 대숲 옆 산절 마당에 흰 구름 흐르는 소리를. 하산길에 들을 수 있을까. 산이 그 높이를 스스로 낮추는 소리를.


<오륙도 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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