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집안 곳곳을 빠짐없이 드리운 시간.
이따금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이잉~ 이잉~ 들려오는 새벽녘.
불쑥 뭉클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내 얼굴에 와닿았다.
'... 응?..뭐지?.. '
" 쌕~ 쌕 ~ "
거슬리는 쇳소리와 함께 온몸이 불덩이인 딸아이.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마저 뜨거웠다.
' 하... 예사롭지 않은데... '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물수건으로 열을 식혀주다가 곧장 준비해서 병원으로 갔다.
" 요즘 독감도 유행이고, 영유아 코로나 재감염도 많아서요 "
검사를 먼저 해보라고 하셨다.
불안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딸아이가 선생님의 입에서 "코로나 검사"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울어대기 시작했다.
" 으앙~ !!! 안 해~~!! 싫어~~~!! 검사 싫어~~~"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렸던 지난겨울.
가족의 코로나 확진에 밀접 접촉자로 검사를 받게 되었던 딸아이.
하필이면 줄을 잘 못 선 아빠 때문에 무자비한 보건소 할아버지 선생님께 코를 내어줬고,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무자비한 코 쑤시기를 해주신 덕에 끝내 코에서 피까지 났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기겁할 만하다.
코로나 검사 대기 중, 세상이 끝난 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얘야... 너는 아직 오지도 않은 곳에 미리 가 있구나 '
예정된 아픔을 기다리는 시간이 실제 고통의 순간보다 더 힘든 것 같다.
그렇게 십여 분 동안 두렵고 고통스럽다가 실제 검사가 이뤄지는 순간에는 찰나의 아픔만이 있을 뿐이다.
현재에는 두려움이란 없다.
아이의 두려움에 대해 바라보자 내 두려움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학창 시절.
금방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상상하며 두렵고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그냥 남들과 비슷한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할지는 몰랐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아이가 울어대는 통에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대기실에서 대성통곡하며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바로 앞 유아 휴게실 티비에서는 뽀로로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옆에는 작은 장난감과 책도 몇 가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참새가 방앗간에 들리듯 당연히 들어가서 구경하고 즐기고 나왔으련만, 검사를 받는 30초를 미리 떠올리며 십여 분을 두려움에 휩싸인 채 흘려보냈다.
잔뜩 힘이 들어가서 면봉만 떠올리고 있는 우리 아이의 눈에 당연히 뽀로로나 장난감 따위가 보일 리가 없었다.
나는 어땠는가?
지금 당장 오지도 않을 미래를 두려워하며 현재의 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지 않았는가?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해봤자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미래에 멋지게 살고 싶기는 하고...
다 그냥 그런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도움을 얻을래야 얻을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떠나자.
그렇다고 떠난 곳에서는 현재를 살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학교 밖으로 나와 밤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닐 때도 한순간도 현재를 즐겨본 적은 없었다.
우리 아이가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잔뜩 힘이 들어가 흘려보낸 십여 분.
내 인생에서는 그게 십여 년이었다.
힘을 빼라.
두려울 것도 꼭 이뤄야 할 것도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지 말아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수많은 <지금, 여기>가 쌓이고 쌓여 다가오는 것이 미래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는 현재가 쌓이면 결국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는 미래가 다가올 뿐이다.
시선을 <지금, 여기>로 돌리자.
지금, 여기서 너 말이야 !!
지금, 당장 !! 하고 싶은 게 뭐야?
지금, 여기서 !! 지금, 당장 !! 너는 존재하고 있니? 살아있니?
지금 당신이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당신이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이고 곧 미래가 된다.
지금, 당신은.
주변에 널려있는 장난감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지금, 당신은.
뽀로로 방송처럼 끊임없이 당신에게 들려오는 기회의 소리를 눈치채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힘을 빼면 보이는 것들이다.
현재를 반짝이며 살아간다면 반짝이는 순간들이 쌓여 다가오는 미래는 당연히 반짝인다.
반짝이는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나로서 지금 반짝이면 그만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어떤 단서를 찾아야 할지에 대한 모든 힘을 빼고
지금, 이 순간을 꽉꽉 눌러 채워놓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또 과거와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었다.
' 그래... 꿈을 찾았다고 치자. 그런데 그걸로 대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 거람!
그냥 회사 다니기는 너무 싫은데... 지금 당장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냐고.
도무지 뭐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
내내 나는 미래를 위해 살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널려있는 행복들은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딸아이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 아이고... 얘야. 힘 좀 빼 ~ !!! 그냥 살아 ~ !!! 그냥 지금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말이야. ! "
그래... 뭐가 그렇게 심각할 일인가.
지금 당장 돈 벌어야 해서 하고 싶은 것을 못 한다면.
아껴놓았다가 시간이 생길 때 하면 되는 거고.
아껴놨던 시간에 하고 싶었던 것을 힘 빼고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자연스럽게 점차 그 시간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머리에서 쫑알거리는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하나만이라도 좀 떼어놓는다면 인생은 조금 더 단순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으며 잠깐이라도 지금을 느껴보자.
생각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