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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버스 Oct 02. 2022

7화 - 하필, 가지볶음

내 꿈은 불청객  

보랏빛이라고 하기엔 더 검붉은 스펀지 같은 가지를 서걱서걱 자르고 달궈놓은 팬에 썰어놓은 양파를 볶아준다. 양파가 조금 투명해질 때까지 볶은 뒤 썰어놓은 가지를 전부 넣어준다.

함께 더 볶아주다가 미리 만들어놓았던 양념장 (간장, 올리고당, 참기름, 마늘, 고춧가루)'을 치익~ 뿌려 조금 더 볶아주면 가지볶음 완성 !!


참 별거 없는 레시피인데 내가 사랑하는 메뉴이다.

어릴 적 학교 다녀온 뒤 심심해질 무렵이면 주방에서 탁탁탁 경쾌한 도마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뒤이어 침샘 어택하는 맛있는 냄새가 나를 주방으로 이끌었다.


" 오예, 가지볶음이다 ! "


요리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늘 백이면 백,


" 이리 와서 간 좀 봐봐"라고 하셨다.


후하 후하 핫뜨

" 어마. 느므 마디떠!! "

우물우물 삼키기도 전에 엄지척 따봉과 함께 시식 평을 전하곤 했다.


" 아빠 오시면 저녁 먹자 "


이제 네 임무는 끝났으니 들어가 있다가 아빠 오시면 저녁 먹자는 말인데, 너무 가혹하다.


이미 고소하고 짭조름하면서 살짝 매콤한 가지볶음이 입안에 들어왔는데 어찌 기다리겠사옵니까 !!


"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어슬렁어슬렁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한두 개씩 더 집어먹곤 했었다.






엄마는 가지볶음을 좋아했을까?

아마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기 시작하며 점점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이 사라져갔다.

평소에 커피나 빵 외에는 음식에 딱히 호불호도 없고 아무거나 배 채우면 그만이지 라며 저녁 식사를 그냥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장 보는데 통실통실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오랜만에 엄마의 가지볶음이 생각이 났다.


' 밥에 쓱쓱 비벼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

' 그래! 오늘은 날 위한 가지볶음을 만들어보자 '

야심 차게 요리했다.


" 오! 드디어 성공했어. ! "


엄마가 레시피를 알려줬지만 어째 매번 그 맛이 안 났는데 드디어 비슷한 맛의 가지볶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혹시나 아이들이 먹을까 싶어 고춧가루는 빼고 만들었는데도 얼추 비슷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 신랑과 아이들에게도 권해봤지만 역시나.

"으웩! 안 먹어 "


' 괜히 고춧가루 뺐네. 다음에는 그냥 고춧가루까지 넣어야지 '


다짐하며 맛있게 몇 수저 먹다가 그만 싱크대에 다 부어버리고 말았다.









나의 퇴사 이야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5년 만에 나를 밖으로 불러준 고마운 회사임에는 분명하지만,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일하는 내내 너무 우울했다.

내 업무의 일이 아니지만 나만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회사 SNS를 키워보겠다며 노력하기도 했는데 혼자서 그러고 있는 꼴을 보자니 너무 웃겼다.


그냥 나는 내 분야에서 실적이 나와야 하는 영업사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나를 위해 일해보는 건 어떨까?

이왕 일할 거 내 회사를 위해 일한다면 회사의 성장이 곧 내 성장이잖아?


조심스럽게 자리 잡은 생각을 조금 성급하게 꺼내버리고 말았다.

하필이면 가지볶음을 앞에 두고 말이다.


" 나 회사 그만두려고. "


" 얼마 전에 대출도 받았는데 어쩌려고. "


" 아이들 케어하며 일하기 너무 빡빡해. 조금 더 여유로운 곳에 가서 대신 여기서 받던 월급만큼 꼭 벌거니까 걱정하지 마 ! "


" 왜 시간이 부족한데? "


" 아이들이 밤에 잠들 때까지 내 시간이 단 10분도 없어! 내 꿈을 위해서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없다고... "


" 하... 누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 그놈에 꿈 꿈 꿈 ! 그동안 노력했는데 별거 없었잖아 ? "


" 됐어! 그만 얘기해 ! "


아픈 곳을 찔렸다.

작년부터 싱가포르에 온라인 한국 셀러로 물건을 팔아보겠다며 난리 쳤다가 포기하고.

국비 무료 웹디자인 학원에 취업 연계 교육받다가 또 중간에 포기해버리고.

이제 정말 내 꿈을 찾았어! 디지털 드로잉 해볼 건데 일단 아이패드부터 사야겠어.

아이패드만 있으면 당장 돈 벌 수 있을 것처럼 요란하긴 했다.


그래도 내 딴에는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어도, 아이들이 아직 어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싶어서 아이 키우면서 아등바등 노력했던 건데...


' 처음부터 성공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 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는거지... '


서운하긴 한데 정곡을 찔려서 할 말이 없었다.


애처롭게 눈앞에 아른거리는 가지볶음을 들고 쿵쿵 싱크대로 걸어가 다 쏟아버리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 왜 하필... 가지볶음... 몇 개 먹지도 못했는데... '

' 내가 다시 가지볶음 만드나 봐라 '


애꿎은 가지볶음은 당분간 또 우리 식탁에 올라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다 늦게 품게 된 꿈은 주변에 불청객 취급을 받게 된다.

현실을 살아야 하니까 그게 이성적이긴 하다.


"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받던 월급만큼은 꼭 벌어올 테니까 !!! "



가지볶음배 퇴사 선언 이후,

호언장담했는데...솔직히 겁이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교롭게도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 저... 대표님...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유치원에 보낼 수가 없어요... "


" 하... 얼마나 출근을 못 하시는 거죠? "


" 저... 최대한 열심히 케어 해보겠지만 만약 다른 한 명까지 이어서 아프게 되면 일주일 이상이요. "


" ....네 "


차라리 내가 아픈 거면 괜찮은데...

불덩이인 아이 바라보는 것만도 마음이 아픈데...

어쩔 수 없이 또 아이 문제로 출근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며 죄인이 되는 게 너무 속상했다.


운명이 등 떠밀어 5년 만에 일하게 되었지만 예견되어 있던 어려움이었다.

어찌어찌 이어가 보려 했으나 언젠가 수면위로 올라올 문제가 터진 것뿐.

면접 당시 아이들 케어를 1순위로 생각해 주겠다던 대표님 말씀만 믿고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불찰이다.


엄마의 직감은 정확했다.

정확히 일주일 지났으니까 말이다.


쌍둥이 중 한 명만 아프다고 나머지 한 명을 유치원에 보낼 수는 없다.

이미 감기가 옮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님과 불편한 전화 이후로 셋이서 집에만 있은 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혼자 씩씩하게 잘 놀고 잘 먹던 다른 한 명이 저녁밥 차리고 있는 내게 와서 말했다.


" 엄마. 추워 "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아프지 않던 아이가 춥다고 말한 뒤 정확하게 다음날.

원래 아프던 아이는 컨디션을 회복했고 뒤늦게 아픈 아이를 간호한 지 4일째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하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왔다 갔다,

새벽에 3시간마다 한 번씩 열 체크 하고 물수건 해주며 졸기를 일주일.

아침 약을 점심때가 다 되도록 안 먹겠다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들 어르고 달래며 일주일이 지났다.


" 여보... 아직 어린 쌍둥이 엄마가 일반적인 회사에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 "


" 그래... 내가 밤에 아르바이트라도 더 하지 뭐... "


" 아냐!!걱정하지 마 !! 내가 지금 받았던 월급만큼은 꼭 벌어올 테니까 !! "


다시 또 큰소리를 쳤지만 믿지 않는 눈치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니까.


하지만 나는 일과 아이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

아이를 위해 돈을 벌지 못하거나, 돈을 위해 아이의 케어가 서운하지 않도록 말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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