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황제 카를 5세만큼이나 금수저인 사람이 있을까?
예를 들어, 삼성가와 LG가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아버지이고 SK가와 롯데가가 결혼하여 낳은 딸이 어머니라 해도, 카를 5세의 족보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다음의 문장을 보자. 이것은 카를 5세가 가지고 있던 공식적인 직함이다. 이것만 보더라고 그가 얼마나 많은 영토를 다스렸는 지를 알 수 있다.
Charles, by the grace of God elected Holy Roman Emperor, forever August, King in Germany, King of Italy, Castile, Aragon, Leon, both Sicilies, Jerusalem, Navarra, Grenada, Toledo, Valencia, Galicia, Majorca, Sevilla, Sardinia, Cordova, Corsica, Murcia, Jaen, the Algarves, Algeciras, Gibraltar, the Canary Islands, the Western and Eastern Indies, the Islands and Mainland of the Ocean Sea, etc. etc. Archduke of Austria, Duke of Burgundy, Brabant, Lorraine, Styria, Carinthia, Carniola, Limburg, Luxembourg, Gelderland, Athens, Neopatria, Württemberg, Landgrave of Alsace, Prince of Swabia, Asturia and Catalonia, Count of Flanders, Habsburg, Tyrol, Gorizia, Barcelona, Artois, Burgundy Palatine, Hainaut, Holland, Seeland, Ferrette, Kyburg, Namur, Roussillon, Cerdagne, Zutphen, Margrave of the Holy Roman Empire, Burgau, Oristano and Gociano, Lord of Frisia, the Wendish March, Pordenone, Biscay, Molin, Salins, Tripoli and Mechelen, etc. etc.
카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임명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독일의 왕, 이탈리아의 왕,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시칠리아 열도, 예루살렘, 나바라, 그라나다, 톨레도, 발렌시아, 갈리시아, 마요르카, 세비야, 사르데냐, 코르도바, 코르시카, 무르시아, 하엔, 알가르베,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카나리아, 서인도와 동인도, 섬들과 대양의 메인랜드의 왕, 기타 등등등. 오스트리아의 대공, 부르고뉴, 브라방, 로트링겐, 슈타이어마르크, 캐른텐, 크라인, 림부르크, 룩셈부르크, 겔데른, 아테네, 네오파트리아,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슈바벤, 아스투리아와 카탈루니아의 공, 알자스의 영 플란데, 합스부르크, 티롤, 고리치아, 바르셀로나, 아르투와, 부르고뉴, 에노, 홀란드, 제일란트, 페레테, 키부르크, 나무르, 로씨용, 세르다뉴, 저트펀의 백작, 부르가우, 오르시타노와 고르치아노의 신성 로마 제국의 후작, 프리지아, 벤디세 마르크, 포르데노네, 바스크, 몰린, 살랭, 트리폴리, 메헬렌의 군주, 기타 등
출처 : 나무위키
요약하자면, 카를 5세는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페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부 게다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미와 일부 아시아까지를 다스렸던, 유럽 역사에서 카이사르 이후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군주였다.
비어도슨트를 자칭하는 내가 이 많은 직함 중애서도 관심을 가진 지역은 가장 마지막에 언급된 메헬렌(Mechelen)이다. 그 이유는 천천히 언급하겠다.
그가 이렇게 많은 영토를 가진 이유는 결혼으로 엮인 가족관계 때문이었다. 우선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이다. 막시밀리안 1세의 배우자는 부르고뉴의 공작인 마리이다. 마리에 관해서라면 나의 책 <방구석맥주여행>의 '부르고뉴의 마지막 상속녀 두체스 드 부르고뉴'를 참고해 보라고 말해 둘 수밖에 없다. 이 또한 맥주팬으로서는 지나칠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으니. 카를이 할아버지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물려받았을 때(아버지를 패싱하고 바로 할아버지로부터 바로 물려받은 이유는 아버지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독일과 체코,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부르고뉴 등의 영토를 물려받았다.
한편, 카를의 아버지인 필리프 1세는 스페인의 공주 후아나와 결혼하였다. 후아나는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라 1세와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 2세의 외동딸이다. 스페인은 이제 막 통일된 연합 왕국을 이루어 번성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마지막 남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레콩키스타를 이루었으며, 여유와 재력으로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한 것도 이 시기의 이사벨라 여왕이다. 그러니까 후아나는 이제 막 통일한 스페인 연합 왕국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필리프 1세는 이 연합왕국의 사위로서 부인 후아나와 함께 왕국을 통치하였으나 '외부에서 굴러 들어온 돌'을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필리프 1세는 공동 통치자가 된 지 2년 만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러하여 어머니 후아나와 카를 5세가 공동 통치자가 되었고, 결국에는 카를 5세가 스페인의 왕이 된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대부분을 통치하다 보니 각 지역마다 카를을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 5세(Karl V)였고,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Carlos I), 이탈리아에서는 카를로 4세(Carlo IV), 지금의 프랑스 영토인 부르고뉴에서는 샤를 2세(Charles II)라 불렀다. 오늘 주제로 삼을 맥주인 카롤루스(Carolus)는 라틴어의 카를이다.
카를에 대한 사전 설명은 이쯤에서 됐으니, 맥주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벨기에 헷 앵커(Het Anker) 양조장의 '구덴 카롤루스 클래식(Gouden Carolus) Classic'이라는 맥주를 마셨다. 짙은 구릿빛에 거품이 조밀하고, 풋풋한 과일향과 캐러멜 향, 브라운 슈가의 스위트함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을 가진 이 맥주는 벨기에 효모를 사용한 전형적인 벨기에 다크 스트롱 에일이다. 그래서 맥주가 맛이 있다는 겁니까? 추천한다는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Yes"이다.
Gouden Carolus Classic.
벨기에, 네덜란드, 저지대 독일 지방의 발음으로 읽으면 '하우든 카롤루스'로 들릴 것이다. 구덴은 영어의 'Gold'의 뜻이다. 그러니까 구덴 카롤루스는 '칼롤루스 금화'라는 의미가 있다. 카롤루스는 앞서 카를의 라틴어 발음이라고 했으니 곧 벨기에 지역에서 당시 사용했던 '카를 금화'를 말한다.
그런데, 이 양조장은 왜 그들의 맥주에 황제의 이름을 붙인 것일까?
맥주 이름에 그 지역의 유명한 인사나 성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예를 들면, 슈나이더 양조장의 바이젠도펠복인 '아벤티누스'는 양조장이 있는 도시의 유명한 성인의 이름에서 따왔고, 벨기에 플랜더스 레드 에일로 유명한 '두체스 드 부르고뉴'는 플랑드르 지방의 마지막 공작의 이름에서 따왔다. 마찬가지로 구덴 카를루스는 이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 카를 황제에게서 따온 것이다. 이 지역이란 바로 양조장이 있는 도시이며, 앞서 카를의 직함에 있는 도시 메헬렌이다.
카를 5세는 1500년 벨기에의 헨트(Ghent)에서 태어났다. 헨트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 있는데, 이 지방은 부르고뉴와 함께 아버지 필리프 1세의 영지였다. 그러니까 필리프 1세는 이 영지를 어머니 마리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카를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필리프 1세가 결혼할 당시 스페인의 후아나 공주가 이곳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아나의 어머니 이사벨라 1세가 사망하자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카를의 부모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하지만 카를을 포함한 3남매를 고모인 마르가레테에 맡기고 갔다. 이 곳이 바로 마르가레테가 살고 있는 메헬렌이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아들마저 버리고 간 부모라니 비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유는 바로 어머니 후아나의 정신병 때문이었다. 후아나는 자식을 키울 수 없을 정도로 광기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이쯤에서 어머니 후아나와 아버지 필리프의 별명에 대해 알아두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로 '광녀 후아나'와 '미남공 필리프'이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보면 이러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 일부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1500년에 장남 카를을 낳은 후 후아나는 신경증과 기절 등의 증세를 보였다. 그중 하나가 남편에 대한 한도 끝도 없는 애정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필리프에 대한 후아나의 사랑은 아름답기보다는 끔찍한 집착에 가까웠다. 에스파냐 통치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아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잘생긴 남편에 대한 끈질긴 애정공세만 계속했다.
고모인 마르가레테는 카를을 친자식처럼 키웠다. 사실상 카를의 고모가 어머니인 셈이었다. 메헬렌에서 자라면서 형성된 인격과 능력이 장차 제국을 통치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헷 앵커 양조장은 1471년에 설립된 양조장을 인수하여 190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구덴 카를루스 맥주를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생산하였다. 설립 당시 부르고뉴의 공작이었던 샤를 1세 - 용담공 샤를이라는 별명이 있다. 프랑스의 샤를이 아니다. 부르고뉴의 마지막 상속녀 마리의 아버지이다 - 는 이 양조장에 소비세와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양조장이 있는 도시 메헬렌에서 카를 5세는 자랐다. 1517년, 성인이 된 카를은 스페인을 통치하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1519년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사망하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었다(이 과정에서도 고모 마르가레테의 힘이 컸다). 아마 카를 5세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를 마시면서 자랐을지 모른다. 이러한 역사 위에 세계 대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양조장이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맥주에 붙인 것은 아주 당연스러운 결과이다.
한편, 황제가 된 카를은 일생을 전쟁 속에서 보냈다. 프랑스와는 이탈리아 정복을 위해 싸웠다(당시 프랑스 왕은 프랑스와 1세). 또한 하필이면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그들 역사 상 가장 뛰어났던 지도자 슐레이만이었다. 오스만과의 전쟁은 육지로나 바다에서나 꽤나 고된 전쟁이었다. 또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종교전쟁도 이 시기였다.
카를의 말년은 쓸쓸했다. 힘이 빠진 카를은 제국을 나누어 스페인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신성로마제국은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주었다. 이때가 1556년이며, 남은 여생을 수도원에서 신경 쇠약과 심한 통풍으로 고생하다 퇴위 2년 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하였다.
구덴 카롤루스 클래식
Het Anker Gouden Carolus Classic
Brewery : Het Anker
Country : 벨기에, 메헬린(Mechelen, Antwerp, Belgium)
Style : Belgian Dark Strong Ale
ABV : 8.5%
짙은 구릿빛이 도는 컬러에 거품이 조밀하다. 풋풋한 과일향과 캐러멜 향이 주로 나는데, 은은하게 바닐라 향과 클로브(정향) 향도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스위트하고 가벼운 신맛에 약한 쓴맛이다. 구체적으로는 건포도와 같은 검은 말린 과일의 맛이 나고 브라운 슈가의 스위트함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난다. 뒷맛은 쓴맛이 강하지는 않으며, 브라운 슈가의 단맛이 길게 남는다. 검은색 맥주에서 나타나는 발효된 간장의 감칠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마음에 든다. 탄산감은 이 정도면 매우 중간 적당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