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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Nov 17. 2018

미국의 금주법, 한국의 금주령, 그리고 맥주순수령

술에 관한 금지의 역사

기원전 4,000 경의 메소포타미아의 유산인 <푸른 기념비>라는 석판에는 맥주를 만드는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술을 즐겨 마셨다는 기록은 기원전 7,000년경부터 있었다. 술은 신에게 받은 선물이었으며, 신을 만나는 중매쟁이였고, 사람들의 일생에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기도 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동의 대가로 돈 대신 맥주를 받았고, 중세의 공동체에서는 무역의 대상이었으며, 중세 수도원에서는 신이 허락한 음료였다. 이렇듯 술은 고대로부터 금욕이 강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 해야 할 대상이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시던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과음과 중독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인의 개성이 생기고 집단이 개인의 삶에 통제와 절제를 강요하는 근대와 와서 술에 대한 금욕이 요구되었다. 술에 대한 금지의 욕망은 지배계급(또는 중산층)이 피지배계급(또는 하층민)을 압박하는 수단이었다.


미국의 금주법
이 조항이 비준된 지 1년 후,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에서 음료용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금지된다.

미국의 수정헌법 18조 제1절 1항이다. ‘볼스테드 법’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금주법은 최대 규모의 대중의 금주운동이었다. 19세기 초  여성들의 지지를 얻고 기독교와 결합한 금주 운동은 알코올 중독자 남편에 의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특히 , '캐리 네이션'이라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가 유명하게 활동하였다. 그녀는 한 손에는 손도끼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술집에 드나드는 남성들을 향해 설교를 퍼붓기도 하고, 손도끼로 술병을 마구 박살 내며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 뒤에는 이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또한 금주법은 중산층이 주도하였다. 사회 중산층의 장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 하층민의 음주 문화에 대한 불만, 범죄와 빈곤에 대한 반감이 알코올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 시기에는 금주당(Prohibition Party)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당의 목표는 완전한 금주의 실현이었다. 결국 1919년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면서,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정치권은 결국 금주법을 통과시키게 된다. 이러한 배경 이외에도 개신교에서 요구하는 금욕적인 삶,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식량의 확보, 식량 낭비의 금지, 맥주로 인해 큰돈을 벌게 된 독일계 이민자들에 대한 반발  등 당시에 금주법이 탄생할 조건들은 충분하였다. 하지만 금주법의 폐해는 상당했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70년대까지 미국 범죄의 기원이 되는 마피아와 조직폭력배의 힘을 길러냈다는 점이다. 어릴 적에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로 '언터쳐블'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금주의 시대 전설적인 마피아 대부인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한 범죄 영화다. 알 카포네가 불법적인 양조와 주류 유통으로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돈을 벌었을지 모르지만, 기존의 양조 업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금주의 시기 양조업체들은 그들의 기술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환했다. 양조 제조업자들은 아이스크림을 만들거나 양조 제조 방법과 유사한 식초를 만들기도 하였다. 금주법의 폐해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음주 습관에도 나타난다. 상류층은 금주법 이전과 동일하게 몰래 술을 제조하고 마신 반면, 하류층은 술과 유산한 음료를 마시거나 메탄올로 술을 만들어 먹다가 죽는 일도 생겼다. 금주법은 정부에게도 타격이었다. 금주법 시절 정부는 주류 세금을 걷을 수 없게 되어 기업에 높은 세금을 내리게 되었다. 게다가 금주법이 잘 지켜지지도 않아 무법천지의 음주의 시대가 되었다. 결국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수 확보를 위해 헌법을 수정하게 이른다. 바로 금주법을 폐지한 것이다.

금주 운동에 앞장 선 캐리 네이션. 출처 :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조선의 금주령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금주령은 태조 4년, 태종 7년 1407, 세종 2년 1420, 세종 4년 1422, 세종 12년 1430, 단종 3년 1455, 세조 4년 1458, 영조 등 조선 초기/중기/후기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금주령은 수시로 시행하였다가 정지되기도 하였으며, 다양한 예외 조항 때문에 엄격하게 시행했다기보단 탄력적으로 운용되었다. 대부분 힘이 없는 백성들만 단속하거나 체포, 체벌하였으며, 양반들은 법을 잘 준수하지도 않았다. 정구선 씨가 지은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에 보면 동양에서 금주령을 내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사람의 성품을 기르고 재앙과 난리의 근원을 막는 것. 두 번째.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를 만났을 때 곡식 소모를 막고 저축하려는 것. 세 번째, 국가의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개인의 양조를 금하고 나라에서 전매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 마지막으로, 사치를 없애려는 것. 이를 보면, 개인에 대한 금욕의 강요뿐만 아니라 국가의 재정적 필요성에 의해 수시로 시행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연회, 국가 제사, 외국 사신 접대 등 나라에서 행하는 행사나 약으로 먹는 경우, 친지를 영접하고 환송하는 경우, 과거 합격자의 유가 시, 집안의 혼인, 장례, 제사, 환갑 등의 행사에서는 예외로 하여 엄격하기 지켜지지 않았다. 금주령을 가장 강력하게 시행한 임금은 영조인 걸로 보인다. 술을 마신 사람을 참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일관되고 강력하게 시행했다기 보단 임금의 일시적인 분노로 인한 결과로 보인다. 임금 자신이 술을 지나치게 즐겨 이에 대한 비판을 덮어보려는 의도가 작용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임금은 잘 지켜지지 않은 금주령을 강화하긴 보단, 규제를 더 느슨하게 풀어 술 먹는 행위 자체는 허용하되 술로 인한 2차 결과만을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조선 초중기에는 술병을 휴대하는 행위를 금지하였고, 조선 중후기에는 술은 허용하되 술주정을 금지하였다. 또한 영조 시기의 좌의정 채제공은 고기와 생선 안주를 금지하는 법을 발의하기도 하였다. 단종은 취하지 않는 자는 처벌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임금은 유독 재상들의 음주 행위는 관대하게 대하였다. 조선의 금주령은 백성들을 구제하고, 개인의 성품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로 시행되었지만, 백성들은 많은 예외조항을 이용하여 여전히 술을 즐겼으며, 특히 양반들, 재상들 사이에서는 금주령을 어기는 것이 심해지게 되었었고 결국 순조 때에 이르러 점점 유명무실해져 시나브로 사라지게 되었다.

주막, 김홍도


독일의 맥주순수령
모든 도시, 시장 및 국가에서 유일하게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재료는 보리, 홉스 및 물이어야 한다. 고의로 이 조례를 무시하거나 위반하는 자는 법원 당국이 반드시 그러한 맥주 통을 압수하여 처벌한다.

맥주 제조에 관한 법령, 맥주에는 기본 재료 이외의 어떤 첨가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순수령은 사실 독일 이전에도 있었다. 기원전 3,000년 경 함무라비의 왕은 맥주에 불순물이 들어가면 숨이 막혀 죽을 때까지 맥주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중세에는 맥주에 물을 타서 판매하는 자에게는 물을 길어 산 위로 올리는 형벌을 내렸고,  질 나쁜 맥주를 판매하는 자에게는 자신이 만든 것과 똑같은 질 나쁜 맥주를 마셔야 하는 형벌을 내렸다. 비슷한 법은 많았다. 하지만 공식적인 포고령은 1516년 4월 23일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에 의해서였다. 바로 라인하이츠거보트(Reinheitsgebot)라고 하는 맥주순수령이다. 맥주순수령은 맥주 품질을 지키려는 수단이었지만, 당시 유행하던 밀로 만든 바이첸 비어를 상류층이 독점하고, 밀과 홉 등을 독점 판매하려는 수단으로도 보인다. 처음에는 맥주 원료가 보리와 홉, 물 세 개였다. 당시에는 효모의 존재를 잘 알지도 못하였고, 나무통에 가라앉은 침전물이 효모였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사용만 한다면 자연 발생적인 것이었다. 1551년에 맥주순수령이 개정되면서 맥주 원료에 효모가 추가된다. 1553년 3차 개정판에는 맥주를 양조하는 시기를 9월에서 다음 해 4월까지로 제한하였다. 기온이 낮은 겨울에 제조해야 맥주의 오염을 방지하고 품질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1919년 독일은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고 바이에른에게 ‘공화국에 참여하라’고 요구한다. 그때 바이에른은 독일 공화국 내의 모든 주에서 맥주순수령을 채택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맥주순수령은 독일의 법이 되었다.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도 맥주순수령은 보호되었다. 이후 독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를 두었고, 미국에는 이민지가 생겼다. 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맥주 제조만큼은 순수령을 따랐다. 그렇게 맥주순수령은 독일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세계로 뻗어 나갔다.

16세기 당시 맥주의 품질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 뮌헨에서 동남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맥주의 품질을 검사하는 방법이다. 세 명의 맥주 검사관이 가죽 바지를 입고 양조장에 방문한다. 맥주 한잔 분량을 기다란 목재 의자에 골구루 뿌려서 펴 바른다. 그 위에 세 명이 나란히 앉는다. 2시간 경과 후 하나, 둘, 셋 구령에 맞혀 일제히 일어선다. 그때 의자가 가죽바지에 달라붙어 올라오면 그 맥주는 합격이다. 의자가 딸려 올라올 정도면 충분히 좋은 맥아를 썼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 문헌

1. <크래프트 비어 북 :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부터 문화까지 크래프트 맥주에 관한 모든 것>, 김선운 저, 숨, 2017년 8월 15일

2.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 조선왕조실록으로 들여다보는 조선의 술 문화>, 정구선 저, 팬덤북스, 2014년 5월 9일

3.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 농업의 탄생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혁명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맥주의 모든 것>, 조너선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 공저, 아론 맥코넬 그림, 계단, 2016년 10월 10일

4.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 : 조금은 정치적이고 목구멍까지 쌉싸름한 맥주 이야기>, 야콥 블루메 저, 김희상 역, 따비, 2010년 09월 15일  

5. <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카미 미쓰루 저, 이현정 옮김, RHK,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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