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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Dec 30. 2018

호가든과 피에르 셀리스 이야기

벨기에 밀맥주, 호가든의 역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호가든(Hoegaarden) 맥주는 벨기에 중부에 있는 호가든이라는 마을의 호가든 양조장(Hoegaarden Brewery)에서 생산되는 위트 비어(wheat beer)이다. 호가든이라는 지방은 벨기에를 구성하는 세 지역 중 하나인 플랜더스의 자치 행정 도시로 인구 6천만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2006년 1월 기준). 이 작은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지방의 이름과 같은 맥주 양조징과 양조장과 이름이 같은 맥주 하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밀맥주를 부르는 여러 가지 말


이 쯤에서 밀맥주를 부르는 여러 가지 말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글의 처음에 사용한 위트 비어(Wheat Beer)라는 것은 맥주에 사용하는 재료 중 하나인 맥아의 양에서 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면 발효의 맥주를 말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일명 밀맥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트 비어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바이스비어(Weißbier)라고 불리는 독일식 밀맥주로 전통적으로 맥아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소 50% 이상이고 밝은 컬러의 상면 발효 멕주이다. 다른 하나는 위트 비어(Witbier)라고 불리는 벨기에식 밀맥주로 코리앤더(고수)나 오렌지 껍질과 같은 향을 가진 맥주이다. 독일식 바이스비어나 벨기에식 위트비어를 모두 흰맥주(White Beer)라고도 하는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부 독일에서 ‘wheat’라는 단어가 ‘white’라는 단어와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 위트 비어는 맥주가 양조되는 장소와 레시피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데 모두 밀맥주라 하여도 무방하다.

바이스비어(Weißbier 혹은 Weiße) : 바이스(Weiß)는 독일어로 희다(white)라는 뜻으로 남부 독일의 바바리아(바이에른)나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바이젠비어(Weizenbier 혹은 Weizen) : 바이젠(Weizen)은 독일어로 밀(wheat)이라는 뜻으로 서부 독일이나 북부 독일에사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헤페바이스비어(Hefeweißbier 혹은 Hefeweizen) 헤페(Hefe)는 독일어로 효모라는 뜻으로 병 안에 효모 침전물이 남아 있어 이렇게 부른다.

위트 비어(Witbier, 흰맥주, 혹은 Wit)는 벨기에식 밀맥주를 네덜란드식으로 한 발음이다.

비에르 블랑쉐(Bière blanche, 흰맥주)는 밀맥주를 프랑스 식으로 한 발음이다.



중세의 호가든


호가든은 현재의 벨기에 밀맥주의 탄생지로 맥주 양조의 역사는 1445년부터 시작되어 1950년 대에 들어 사라졌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709년에는 호가든에는 12개의 양조장이 있었으며, 1745년에는 30개로 늘어 났다. 당시의 호가든 인구가 2,000명이라고 하니 인구 수에 비해 얼마나 많은 양조장이 있었는 지 알 수 있다. 50년이 흐른 후에는 호가든의 주민이 3,000명이 되었고, 양조장 수는 35개가 되었다. 주민 100명당 1개의 양조장이 있었던 셈이었다. 1880년에도 여전히 13개의 양조장과 9개의 증류소가 있었다. 1914년에는 6개의 양조장만 남게 되었다. 호가든의 밀맥주 양조장은 필스너나 다른 라거 스타일의 맥주에 밀려 점점 자취를 감추다가 1957년 마지막 남은 톰신(Tomsin) 양조장마저 문을 닫아 버렸다. 이때 (호가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에르 셀리스는 자신의 고향인 호가든의 밀맥주를 부활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호가든의 아버지 피에르 셀리스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는 1925년 3월 21일에 호가든 도시의 외곽 지역에서 태어났다. 셀리스의 아버지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소고기와 유제품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셀리스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목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끔씩 집 건너편에 있었던 톰신의 양조장에서 양조 일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톰신의 양조장은 1957년에 문을 닫으면서 호가든 지방에서의 밀맥주 양조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셀리스는 지역의 친구들과 맥주를 나누면서 더 이상 지역의 밀맥주를 마실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 했다. 셀리스는 농담으로 '내가 만들면 되지'라고 말하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안 될게 뭐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셀리스는 결국 1966년에 허름한 양조장의 장비를 사들여 호가든의 밀맥주를 부활시키기로 하였다.


원래 셀리스는 결혼한 이후 아버지의 유제품 사업을 이어 받아 우유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맥주 양조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셀리스는 양조를 시작한 첫 해인 1965년에는 제대로 된 설비 없이 아버지의 헛간에 있는 욕조를 사용하여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셀리스는 주변의 양조장이 망하자 아버지로부터 돈을 빌려 휴스든-솔더(Heusden-Zolder)의 버려진 양조장에서 나온 양조 설비를 사들였다. 1966년 셀리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셀리스 양조장(Celis Brewery, Brouwerij Celis)을 설립하고 그해 3월 밀맥주를 다시 생산하게 되었다. 셀리스는 호가든을 만드는 데 전통적인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가장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 전통적인 맥주 재료인 물, 효모, 밀, 홉은 물론이고 코리앤더(coriander)라고 하는 고수와 말린 큐라소(Curaçao)의 오렌지 향 껍질을 사용하였다. 셀리스는 품질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품질이 없다면 멋진 레이블이나 마케팅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1980년대에 밀맥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주변의 레몬네이드 공장까지 사들여 사업을 크게 확장하고 양조장 이름을 드 클루이스(de Kluis)라 하였다. 셀리스의 밀맥주는 크게 성장하여 호가든 뿐만 아니라 벨기에의 모든 양조장에서 밀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85년에 호가든 양조장에 큰 불이 나게 되었다. 양조장은 부분적으로 타버려서 재건할 수도 있었지만 건물이 보험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큰 돈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때 손을 내민 기업이 스텔라 아루뚜아를 생산하고 있었던 벨기에의 인터브루(Interbrew)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나중에 브라질의 암베브(AmBev)와 합병하여 인베브(InBev)가 되었고, 현재에는 앤하이저-부쉬와 합병하여 앤하이저-부쉬 인베브가 되었다. 인터브루는 양조장을 재건하기 위해 주변의 큰 건물을 살 수 있도록 큰 돈을 빌려주었는데, 셀리스는 지분의 45%를 내주고 이 대출의 대가로 호가든 맥주 생산 방식에 대해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인터브루는 원감 절감을 지시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변화하라고 셀리스를 압박했다. 셀리스는 이러한 변화애 환멸을 느끼고 양조장을 완전히 팔아, 그 수익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양조장을 만들게 되었다.


셀리스는 텍사스 주 오스틴에 셀리스 양조장(Celis Brewery)을 설립하고 호가든의 원조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맥주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텍사스는 셀리스가 처음으로 미국과 인연을 맺고 미국으로 처음으로 호가든을 수출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번 양조장도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셀리스 양조장의 지분 45%를 밀러(Miller)에 매각하게 되었다. 밀러 또한 인터브루처럼 맥주 제조에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셀리스는 결국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75세의 나이에 은퇴하였다. 밀러는 결국 양조장을 닫아 버렸으며 시설과 브랜드명을 미시간 양조 회사(Michigan Brewing Company)에 매각하였다. 셀리스는 은퇴 후 전 세계를 떠돌면서 밀맥주 양조법을 전수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맥주 중 하나가 세인트 버나두스 위트비어(St Bernardus Witbier)이다. 셀리스는 2011년 4월 9일 암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는 벨기에 밀맥주의 전통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참고한 자료들


Belgian beer and travel, Pierre Celis: A Conversation in Hoegaarden

http://belgianbeerspecialist.blogspot.com/2011/04/pierre-celis-conversation-in-hoegaard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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