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되면서 내 방이 생겼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있는 방이다. 어느 날 엄마랑 슬영 이모가 으쌰 으쌰 구령을 맞추면서 집 안으로 길쭉한 나무토막을 많이 가져왔는데, 바로 조립식 벙커침대라고 했다. 옮기는 것을 도와준 슬영 이모가 돌아가고 엄마는 곧장 침대 조립을 시작했다. 나도 도왔다. 내가 한쪽에서 나무를 잡아 주면 엄마가 반대쪽을 잡고 나사를 돌려 끼워 조립했다.
"엄마, 나 도움 되지?"
"당연하지. 아유, 그걸 말이라고."
조금 땀이 났지만 할 만했다. 침대 위에는 두툼한 매트리스를 올리고 초록색 이불을 깔았다. 엄마는 이불 색과 어울리도록 초록색 꽃이 그려진 커튼을 달아 주었다. 창고에 있던 카펫도 꺼내 와서 깔았는데, 쿰쿰한 냄새가 났지만 며칠 지나니 괜찮아졌다. 난 동생더러 카펫 위에서 앉거나 뒹굴거려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침대는 안 된다고 했다.
내 방문을 열면 거실이 아니라 안방이 나오는 거라서 난 다른 애들보다 처지가 나았다. 내 친구들은 방문을 열면 거실이 나오기 때문에 차마 한밤중에 황량한 운동장 같은 거실을 가로질러 엄마 아빠 침대로 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무서워도 참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채 잠든다고 했다. 나는 문 열면 바로 엄마가 보인다고 했더니 다은이랑 한서가 좋겠다고 했다. 근데 등 돌리고 있던 주영이가 갑자기 내 쪽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그건 진짜 방이 아닐걸? 방에 있는 드레스룸에다가 침대만 놓은 거잖아. 원래 방 안에 방이 있을 수는 없어."
드레스룸이 뭔지는 몰랐지만 방 안에 방이 있을 수 없기는 개뿔이었다.
"아니야! 우리 집은 그래."
"응~ 아니야. 조하진 방 개 좁쥬? 진짜 방 아니쥬. 개킹받쥬?"
양주영은 이렇게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걸로 놀리면 안 된다고 했어. 선생님이."
"주영아, 너 그렇게 말하면 친구 기분이 안 좋아지잖아."
한서랑 다은이가 양주영한테 한 마디씩 했다. 난 말을 하기가 싫었다. 화가 많이 나서 심장이 세게 뛰었다. 난 다섯 살 때 심장 수술을 했으니까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별로 몸에 안 좋을지도 모른다. 한서가 큰 소리로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주영이가 하진이 놀렸어요. 하진이 방 좁다고 놀렸어요!"
선생님 책상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 몸을 일으켜 우리 쪽으로 오셨다. 양주영은 어차피 맨날 못된 말을 하는 애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내 편을 들고 계실 것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이니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 얼굴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주영이랑 하진이 서로 싸운 거야?"
"싸운 거 아니고 양주영이 저 놀렸어요."
"아, 하진이한테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 하진아, 미안해."
어차피 양주영은 나한테 진심으로 미안한 건 아닐 거였다. 그리고 선생님도 그걸 아시는 것 같았다. 양주영은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반성하는 척하다가 마침 지나가던 선우한테 같이 물 마시러 가자고 하면서 나가 버렸다. 그 틈을 타서 난 고개를 벽 쪽으로 돌리고 눈물을 닦았다. 근데 역시 선생님은 내 편이 맞았다. 등 뒤로 발소리가 들리면서 선생님 냄새가 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선생님은 내 책상 옆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다정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하진이 방이 생겼어? 정말 축하한다. 좋겠구나."
"네."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넓지는 않아요. 근데 엄마가 아직 제가 어려서 괜찮대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내 심장이 콩 콩 원래 제 속도로 뛰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 우리 집에 선생님을 초대하자고 엄마한테 말했던 게 생각났다. 엄마는 담임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다고 했지만 내 방에 초대하는 거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내 방은 내 방이니까.
선생님은 내 침대에 앉아 봐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