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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May 23. 2022

1. 복학생의 특별한 하루

1평범한 대학생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다


1. 복학생의 특별한 하루

 창밖으로 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책상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침대에서 쉰다는 것이 잠이 들어버렸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학교 수업이 1교시부터 있어서 일찍 일어나야했다. 부모님께 아침인사를 한 후,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씻고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식탁에는 막 지은 하얀 밥과 시골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방에 있던 여동생도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고, 식탁에 가족이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가족끼리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다보니 등교시간이 가까워졌다. 사실 내가 조금 늦게 일어난 것도 원인이었다. 밥을 소금이 뿌려진 김에 대충 싸 먹고, 집을 급하게 나섰다. 어머니는 문 밖을 나가는 나에게 ‘차 조심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 * *

 3월의 아침 공기는 쌀쌀했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나를 깨웠던 참새들이 벌레를 주어먹고 있었다. 걸으면 전철을 놓칠 것 같아서 나는 달렸다. 얼마 전에 새로 산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전철역 게이트를 통과하자 전철이 막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두 칸, 세 칸씩 뛰어서 전철을 겨우 잡아탔다. 숨이 좀 헉헉댔지만 체력적으로 문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서 육체적인 노동과 헬스를 하며 단련된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축구나 농구같은 스포츠에서도 전성기의 나이가 이십대 중반이라고 했던가. 내가 바로 그 나이였다. 삶에 자신감도 있었다.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니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학해서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고시공부에 매진하여 2~3년 뒤에 행정고시 합격.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행복한 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전철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캠퍼스는 푸른 잎이 새록새록 솟아나 생동감이 있었다. 첫 학기의 첫 달이라, 학생들은 설렜고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지만, 대학생활은 이십대 대학생들에게 흥미진진한 방탈출게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날의 수업을 모두 듣고 고시반으로 올라갔다. 

* * *

 고시반에는 개인 책상과 사물함, 전공서적과 문제집들이 비치되어 있어서 공부에 전념하기 좋았다.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 형들과 짧은 인사를 하고 내 책상에 앉아 행정법 책을 폈다.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여백이라, 어려운 단어와 문장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천장형 에어콘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이 내 몸을 아늑하게 감싸안았다. 나도 모르게 두꺼운 책을 베개 삼아 엎드려 잠이 들었다. 

“야, 집에 가서 자”

 옆 자리에서 공부하던 선배가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밤 11시였다. 입에 묻은 침을 닦고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아침에 불었던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시끌벅적했던 캠퍼스는 조용히 가라앉았고, 어두운 하늘에 별 몇 개가 반짝 빛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이 잠에 무너져버려 자괴감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젊고 건강했으며 내일은 또 밝은 태양이 뜰 것이다. 날이 더 따뜻해지고 푸른 잎이 짙어지면 이제 꽃 필 날이 머지않았다. 휴대폰을 열어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부하느라, 아니 자느라 문자를 못해서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몇 주 뒤에 벚꽃이 피면 한강이나 어린이 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해야지. 벚꽃 향기가 어디선가 나는 것 같았다. 

 나의 평범한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인생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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