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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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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두개 Jun 15. 2021

산마늘



 산마늘의 다른 이름은 명이나물. 우리가 농사짓는 양배추 밭 위에 산마늘 밭이 있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겉잎을 훑어 따면 피 박스로 하나 정도는 나온다. 그것을 잘 씻어다 장아찌를 담갔다. 별다른 밑반찬이 없을 때나 돼지고기를 요리하는 날에는 필수로 먹는 것이 산마늘 장아찌다.


 산마늘의 맛은 달콤 쌉쌀하다. 그리고 나는 산마늘에 대해 맛과 비슷한 정서를 갖는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마음. 나에게는 이모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키워주신 분이다. 그래서 친어머니보다 더 엄마 같고, 편하고, 대화가 통하는 존재랄까? 그러면서 내 마음을 참 아프게 하는 사람이다. 이모는 4남매의 장녀로 태어나서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외할머니랑 이모랑 둘이서 칼국수 장사하던 시절을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칼국수를 푹 삶으시면 이모가 오토바이에 국수랑 나를 실어서 배달을 다녔다. 그러면 동네 어른들이 귀여워서 천 원짜리 몇 장 주시곤 했다. 장사가 꽤나 잘 됐는데 집주인이 샘이 났는지 쫓아냈다. 그 후에 이모는 다양한 일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되던 무렵부터 울릉도에 드나들더니 어느새 장아찌 장사를 크게 하고 있었다.


 “이두개야, 이게 명이나물이라는 거야.” 나는 오묘한 산나물 맛에 사로잡혀 언제쯤이면 이모가 장아찌를 또 가져다주시려나 기대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요일에는 교회를 마치고 이모가 일하는 백화점 식품관에 가는 것도 낙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 벌써부터 저 멀리 들리는 우렁찬 우리 이모 목소리. 고되 보이기도 하고 장아찌 담가서 이렇게나 장사를 잘하는 우리 이모가 대견해 보였다. 목청이 얼마나 큰지 이모의 작은 키를 훌쩍 넘어 절대 작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장사를 하다가 이모가 사는 세상에 폭풍이 휘몰아치고 갔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연히 울산으로 내려갔다. 전화 한 번 해볼 법 한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슨 위로를 전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한 번 웃게나 해줄까. 몇 년을 멀어져 있다 내가 23살에 한라산을 등반했을 때, 정상에 서서 이모 생각났다. 갑자기 든 용기에 전화를 걸었다.


 푹 죽은 목소리. 마치 짜디 짠 간장에 절여진 장아찌처럼 숨이 죽어 있었다. 모든 가족들이 이모를 향하여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그럴까, 왜 그 모양일까” 물음표를 던질 때 나는 감히 동조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살기 싫을까, 얼마나 처절할까. 전화기 너머 쫄쫄쫄 소주 따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잔 털어 넣고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씩씩한 사람이다. 한 번도 “나는 안돼, 이제는 안돼”라며 주저앉는 모습을 본 적 없다. “네가 알잖니. 이모 손맛 좋은 거. 이 동네에는 치킨집이 없어서 한 번 해보련다.” 이모가 울산에서 숨죽여 산지 3년 만에 다시 움텄다. 이름도 이모다워, 덩실이 치킨이다.


 흔하디 흔한 치킨을 보면 또 이모 생각이 나겠다. 아쉽게도 덩실이 치킨을 아직 못 먹어 봤다. 이제는 장아찌와 관련 없이 사는 이모지만 난 그의 삶이 장아찌 같다. 장아찌는 시간이 적당히 지나 삭어야 맛이 난다. 이모가 그의 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장아찌를 담아본 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 흘러야 아픈 것 다 지나고 또 살아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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