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는 부추 요구리를 드릴게요
여름의 한 복판에 있다. 고추 농사를 짓는 덕에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 쏟아지는 고추를 쉴 새 없이 받아내는데 돌아보면 아직 한 두둑을 못 마쳤다. 장마가 코앞까지 와 찌는 더위에 습기가 더해져 땀이 줄줄 흐른다. 참 농부다운 여름을 보내고 있음을 실감 한다. 더워서 입맛을 상실할 법 하지만 오늘은 무엇을 요리해볼까 입맛을 다시고 있다. 밭에서 얻은 감자니 호박이니 제철을 맞은 채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채소는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4월 즈음의 부추를 먹고 알았다. 강원도는 겨울이 길어서 텃밭 작물도 늦게 심는다. 그래서 직접 채취한 풀 중에 처음 요리해 먹어본 것이 부추였다. 닭장 가는 길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풀들이 있었는데 사실 부추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추위가 물러나고 땅이 푸르러질 때쯤 삐죽한 풀의 키가 성큼 자라 있어 그제야 들여다보았다.
‘부추였구나!’ 이제 막 돋아난 연한 부추를 반갑게 악수하듯 두 손 가득 쥐었다. 먹기 좋게 듬성듬성 썰어 그릇에 넣고 머릿속에서 상상한 대로 맛을 추가했다. 식초, 매실액, 소금, 참기름, 고춧가루. 계량은 필요 없다. 머리와 혀의 상상 합작을 손과 발이 거둘 뿐이다. 그리고 맨손으로 서걱서걱 버무려 한 입. '내가 이렇게 맛있는 부추무침을 할 수 있다니' 칭찬까지 곁들인다.
여느 제철의 채소가 그러하듯 연한 부추는 맨입으로 먹어도 맛있다. 오늘 부추를 한 움큼 잘라내면 며칠 뒤에 또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지져먹고 무쳐먹고 볶아먹다 지겨워져서 부추를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소홀했던 부추를 들여다보니 꼿꼿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맛있을까 하여 먹어보니 처음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때 모든 음식에 제철이 있는 이유를 알았다. 식재료가 가장 맛있을 때 먹어보면 그다음 해가 기다려진다. 제철 음식은 삶의 소소한 기쁨, 어쩌면 시골 살이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된 노동 뒤에 다시 힘을 내 채소를 다듬는 나를 발견한다.
서울에 있을 때는 어머니께서 부추를 아무 때고 사 오셨다. 술 담배 많이 하시는 아버지의 피를 맑게 해야 한다면서 항상 냉장고에 부추를 쟁이셨다. 그 부추로 아침마다 요구르트와 갈아서 아버지를 괴롭혔다. “여보, 이건 맛이 없어도 먹어야 해.” 제철도 아닌 부추를 요구르트에 갈아서 마셔야 했던 아버지는 무슨 심경으로 드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난다. 아마도 아내가 주는 사랑의 맛으로 드셨겠지? 그렇다면 사랑은 부추 요구리’ 맛일까?
저렴한 가격에 거저 파는 야채들만 먹어왔던 내가 부추를 시작으로 채소도 다 나름이라는 것을 배웠다. 금세 흙을 털어내고 입 속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짧을수록 맛있는 것이 풀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부추가 가장 맛있을 때 놀러 오시라고 해야겠다. 나만 이 맛을 알기엔 아쉬우니까. 깨끗한 공기 마시고 부추도 왕창 먹으면 피가 맑아지려나?
냉장고 속 신문지에 싸여 있는 부추를 보고 살아온 내가 이곳에 와서 부추의 깊은 맛을 배웠다. 농부로 살다 보니 귀찮아도 움직여야 함도 배웠다. 두 눈 질끈 감으면 그만인 걸. 가만가만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토마토와 가지와 열무를 모른 체할 수 없다. 결국 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이기적인 일이지만 시골사람이라면 제철의 채소들을 거두어 주는 것이 도리임을 깨달은 것을 보면 나도 철이 드나 보다. 부추를 거두었던 이맘때쯤 내년에는 보다 넉넉하고 깊은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는지. 가장 맛있는 부추 요구리를 드릴게요. 정말 철이 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