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엉뚱한 자서전
#12.
2015년 1월 5일.
남은 세 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막내랑 나는 까짓 거 훌훌 털어버리고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으로 복귀했다.
석 달만에 Kate님과의 재회도 일주일이면 됐다. 다시 시작된 취준생 모드.
지원분야는 '인사(HR)'로 정하고, 국방부 전직교육원의 채용공고를 주로 이용했다. 장교출신의 장점을 이럴 때 써먹었다.
빠르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을 한 곳은 D제약회사 인사팀. 사업장은 명동 한복판.
그래서 장모님 절친 이모님 댁에서 잠시나마 출퇴근하기로 하고 새벽같이 지옥철 출퇴근 왕복 3시간짜리를 해봤는데.. 서울 직장인 분들 존경합니다.
여기는 딱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팀장님이 육사출신이시란다. 입사 3~4일째 되던 날 팀장님께서 따로 회의실로 부르셨다.
"H 씨, 혹시 어깨에 뭐 있어요?? 저쪽 영업본부 동료들이 H 씨 와이셔츠 사이로 자꾸 뭐가 비친다고 그러던데"
"아.. 뉴질랜드에서 타투를 한 게 좀 있습니다."
"H 씨, 우리가 인사팀이면 회사의 얼굴인 건 알고 있죠? 그리고 우리 회사가 제약회사라 좀 보수적인 것도 알고 있나요?"
"......"
"그럼 타투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지워야 되겠는데"
"아.. 이게 저한테는 뉴질랜드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담은 의미 있는 거라서...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럼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것 같아요. 지우든가 아니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무조건 와이셔츠 안에 T자 러닝을 받쳐 입고 다니든가"
"네, 알겠습니다."
집에 와서 Kate님께 전화를 했다. 아직 자리 잡기 전이라 Kate님은 서울에 합류하기 전이었다.
"아니 오늘 팀장이 다짜고짜 이러쿵저러쿵 하시는 거야. 타투를 지우든가 아니면 맨날 와이셔츠 안에 T자 러닝을 입고 다니라고! 나는 절대 지울 수 없다고 했지. 그건 나한테 뉴질랜드 기억을 지우라는 것과 같으니까!"
"너무하네~~"
한편, 뉴질랜드에서 Kate님과 각자 서로에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약속했었고 Kate님은 커피 바리스타를, 나는 타투를 새기기로 했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얼마 전 타투를 해볼 참으로 오클랜드에서 수소문을 했고 꽤 유명한 장인이 한다는 가게에서 타투를 했다. 원래 이런 건가 싶은데, 장인이 어떻게 새겨줄까 물으시더라. 그래서 뉴질랜드에 오게 된 일부터 와서 있었던 좋았던, 즐거웠던, 재밌었던, 행복했던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행운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그 말을 듣고선 직접 마오리족 타투를 이틀에 걸쳐서 새겨주셨다. 돌아가는 길에 호주에 들를 때를 포함해서 2주 동안이나 어깨에 랩을 칭칭 감고 있었더랬다.
일도 일이지만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오래 다니지 못할 거라면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일주일차되는 마지막 출근일에 업무를 마치고 팀장님이 퇴근하신 후 정중히 손 편지를 적어 결재판에 끼워 책상에 올려드리고 나왔다.
'팀장님, 송구합니다. 타투를 지울 수 없습니다....(중략)....'
Kate님이 있는 평택으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의 회사에 합격했다.
역시나 인사팀으로 지원했는데 마침 H자동차 1차 밴드지만 매출 등 기업이 탄탄한 중견그룹사 같았다. 부품기업이라 평소 들어보지는 못했다. 임원면접은 서울 쪽 본사에서 봤는데 ROTC인 점을 높이 평가해 주셨다.
약속해 주시기를 "일단 본사에 자리가 없으니 천안공장에서 실무경력을 쌓으면 그때 불러주겠다."
천안공장으로 출근해 보니 집에서 자차로 편도 한 시간이나 걸렸다.
나보다 나이 적은 사수가 한 명 있었다. 첫날부터 이것저것 많은 걸 알려줬다. 나는 뉴질랜드 가기 전 D사에서 주로 노무 쪽에 치우친 업무를 많이 했어서 입사지원할 때도 주로 그쪽 직무를 상세히 적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입사한 S사 천안공장에서는 중견 이하 회사다 보니 세부직무별 담당자가 있다기보다 인사팀에 사수 한 명이 거의 메인업무를 두루 다 하고 있었다. 인수인계받는 첫날부터 과부하가 걸렸다.
'채용직무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러는 동시에 첫 출근한 주 목요일이었던 것 같다. 오후 무렵 현재 재직 중인 M사에서 '서류합격'이라는 문자가 왔다. 집에 가서 면접 안내문을 확인해 보니 당장 그다음 주였다. 입사하자마자 연차를 썼다.
또다시 Kate님과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Kate님은 자꾸 불안해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로서는 좀 더 나은 곳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매일 자차 왕복 두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허비하기에는 나 자신에게 여전히 아직까지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도 거기까지였다.
어찌 보면 일이 많아 회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기회를 준 각각의 회사에는 죄송하기 그지없다.
M사는 합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 그 사이 에피소드 회사가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다.
인천에 본사를 둔 환경분야 회사(참고로 인천이므로 I사라고 하겠다)였는데 정확한 회사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상 깊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회사 본사 건물이 무슨 건축대상 수상을 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회장님의 경영철학이었다. 충북 보은 출신이셨던 것 같은데 출신 지역 학교에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계셨다는 것과 본사 직원들에게 주 1권씩 책을 읽히게 하고 후기를 올린 우수 직원에게는 매월 포상을 하고 계셨다. 회사 경영에 있어 책에서 오는 깊은 울림이 크셨던 것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주 짧게 거쳐간 다른 회사들과 달리 여기 I사는 입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흥미로웠던 사실이 있다.
S사를 그만두고 평택집에서 M사 면접 등을 준비하던 때 I사 인사팀 채용공고가 '사람인'에 떴었다. 회사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경영철학 등이 인상 깊었고, 마침 절친 한놈이 인천에 있어 합격한다면 자주 볼 수 있겠거니 싶어 지원했다. 그런데 면접에 가서 또 떨어졌다.
불합격 통보 뒤에도 사람인을 여전히 기웃거렸는데 일주일 뒤에 I사의 앞서 냈던 똑같은 채용공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합격한 분이 나처럼 곧장 그만둔 모양인가 보다.'
같은 지원서를 내면서 한 줄 더 보탰다.
'앞서 채용에서 면접까지 갔으나 떨어졌던 지원자입니다. 이번에는 꼭 합격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바로 회장님께 자필 손 편지를 쓴 것이다. 글씨로 승부를 걸었다. 어차피 민간회사이고 인사권은 회장님의 권한이시니.
'... (중략)
회장님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치, 인재상 등이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너무 일맥상통합니다. 앞서 면접에서 떨어져서 너무 아쉬웠는데 일주일 만에 같은 공고가 나와 다시 지원하면서, 이래도 되나 싶지만 회장님께 제 의지를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 편지를 드립니다.
(중략)....'
그로부터 며칠 지난 오후 나절 전화 한 통이 울렸다.
"여보세요, H 씨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는 I사 비서실입니다. 회장님께서 H 씨에게 내일부터 당진사업장으로 출근하라고 하십니다."
"네?! 아... 제가 지.. 지금 고향인 통영에 내려와 있습니다. 내일 바로는 출근할 수 없어서 제가 다시 전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편지가 회장님께 닿은 건가.
당장 출근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마도 앞서 채용 기수가 당진사업장에서 신입직원교육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 바로 합류하라고 하신 듯하다.
순간 당황 했고 가슴도 두 근 세 근 했지만 이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시간을 조금 벌었다. 나는 지금 통영에 있지 않고 평택에 있었기 때문이다. Kate님은 출근해 계신 시간이고.
Kate님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장님께 전화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짧은 시간 안에 아주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였다. 왜냐하면 M사에서 오전에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M사가 더 안정적이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두 번 세 번 멘트연습을 하고서 다시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I사 비서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두어 시간 전 전화받은 H라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제게 당장 당진사업장으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해주신 점은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만 같이 지원했던 회사에 최종합격 통보를 먼저 받았기에 양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다음 기회가 있다면 그때 같이 근무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해본 최고의 정중한 거절 의사였다.
현재 M사에 입사하고 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동생뻘 취준생들에게 해주는 직접 경험담 중의 하나가 된 케이스다.
'취업하려면 이 정도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