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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03. 2015

잘 알지도 못하면서

때로는 무관심이 더 아름답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 때로는 무관심이 더 아름답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관심이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다음은 가수 이랑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가사다.        


“난 사실 멋 내는 게 좋아.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슬쩍슬쩍. 그런데 누가 멋 냈느냐고 물어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내가 왜 그러는지 내가 왜. 어려서부터 울 언니가 나보다 훨 예뻤어. 얼굴도 작고 늘씬한 서구형 미인. 그래서 내가 언제부턴가 멋 부리려고 했더니 못생긴 애가 멋 부린다고 어른들이 놀렸어. 그래서 그랬어.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난 그 말만 듣고 그럼 나랑 사귀자고 했어. 그런 식으로 만난 남자만 해도 벌써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 일곱 명 여덟 명. 내가 왜 그랬는지 내가 왜. 그러니까 너도 함부로 나한테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그렇게 말하지 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나 예쁘니? 어디가? 진짜? 그럼 나랑 사귈래?”


언니보다 못생긴 동생의 한이 묻어나는 노랫말이다. 동생은 언니가 미운 것도 아니고, 못생긴 애가 멋 부린다고 놀리는 어른들이 미운 것도 아니다. 정말 미운 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일에는 그 배경이 있고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고 함부로 말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언어폭력이다. ‘저 아이는 남자관계가 복잡해’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말 일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 밖으로 내는 건 경솔한 행동이다.  


진심 어린 관심은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힘이 되는 관심과 상처가 되는 관심은 그 경계선이 너무 모호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조심하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관심이라면 나는 차라리 무관심을 택하겠다. 그것이 오히려 상대를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딴에는 사랑의 표현으로 관심을 표현한다고 한 것이 듣는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한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여섯 글자의 명목을 갖다 댄다 해도, 아무리 애정을 담는다 해도, 내가 뱉는 말이 상대의 속마음을 100% 완벽하게 헤아린 말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잘 알지 못한 채 내뱉는 말은 상대에게 불가피한 상처를 안길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조언도 자제하는 게 좋다. 관심이 있어야 조언도 따르는 것일 테지만, 조언은 도 넘은 관심일 때가 많다. 상대방이 어떤 어린 시절을 겪었고, 그 어린 시절 사건들이 지금의 성격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러한 행동의 배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네는 조언은 사랑이 아닌 교만이다. 그런 조언을 하는 심리 속에는 상대에 대한 지배욕이 숨어있을 수 있다. 타인을 자신의 의도대로 컨트롤하려는 우월의식에서 조언이 나오기도 한다. 저 사람 나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나 보다 하고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것. 그런 침묵이 때로는 더 아름답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면 우리는 타인을 향해 늘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 다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관심을 표현할 때는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나서 표현을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잘 모르는 이에게는 무관심이 오히려 배려이고 예의다. 괜히 상대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아는 척 했다가는 이런 소리만 들을 것이다.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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