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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1. 2015

풋사랑의 비애

젊은 날의 사랑과 소통불능




풋사랑의 비애
: 젊은 날의 사랑과 소통불능





내가 아는 두 꽃중년 아저씨의 첫사랑 이야기다. 


먼저 첫 번째 아저씨 이야기다. 지금은 50대에 접어든 그는 고등학생 때 옆집 누나를 열렬히 짝사랑했다. 선이 곱고 피부가 뽀얀 그녀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룬 날이 여러 날이었다. 드디어 마음을 먹고 고백을 하기 위해 그녀 집을 찾아갔다. 그녀는 동생과 함께 마루에 앉아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도저히 여자한테서는 날 수 없는 지독한 똥냄새가 났다.

 

“안녕, 동혁아! 웬일이야?”


반갑게 맞는 그녀에게 “아... 아... 그게... 아... 아니야!”라는 한 마디만을 던지고 그녀 집을 뛰쳐나왔다. 똥냄새가 그녀에 대한 환상을 산산조각 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너무 숙맥이라 그 냄새의 정체를 물을 용기도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본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뒤,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된 아저씨는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고 거기서 그 누나를 만났다. 모든 게 빛바랜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아저씨는 스스럼없이 옛날이야기를 누나에게 털어놨다. 누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부터 고백하러 갔다가 맡은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까지. 그러자 누나는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맘때면 동생이랑 마당에 떨어진 은행열매를 치마에 한 가득 주워 모으곤 했다고. 아마 네가 왔을 때 치마에 은행열매를 한 가득 안고 있었던 같다고 했다. 옆에 함께 나온 동생도 언니 말이 맞다며 거들었다. 35년 만에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저씨는 아련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그때 고백하러 갔을 때 지독한 냄새가 무슨 냄새냐고 솔직하게 물었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그 누나가 지금의 내 아내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아저씨는 허허허 웃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셨다.


다음은 두 번째 아저씨 이야기다. 지금 50대 중반이 된 아저씨는 어릴 때 첫 번째 아저씨만큼이나 숙맥이었다. 충주가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네에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 그는 밤에 집에 가는 그녀 뒤를 따라 걸으며 안간힘을 내서 말을 붙였다. “저기... 저... 저... 저기... 저...” 그렇게 둘의 사랑은 시작됐다. 고등학생 시절 3년을 내내 힘들 땐 토닥여주며 함께 공부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좋은 이성친구가 되어주었다.  


끝내 다가온 대학시험. 운명의 장난은 이때부터였다. 아저씨만 대학에 떨어진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남자친구가 안쓰러웠다. 재수를 결심한 그에게 어떻게든 여자친구로서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생인 자신은 공부에 방해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힘들었을 제안을 했다. 재수하는 동안에 최대한 만나지 말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마음을 오해했다. 이제 대학생이 됐다고 자기 같은 재수생 따위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말이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는 그녀를 차버렸다. 그들의 풋풋했던 첫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조각나버렸다. 


내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저씨는 그때 자신이 참 어리석었노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를 위해 그렇게까지 속 깊은 배려를 해준 그녀에게 자신의 못난 열등감으로 모질게 대했으니 어찌 미안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때 그녀와 만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벌써 30년도 훌쩍 지난 그때 이야기를 아저씨는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의 애틋함이 묻어났다. 모든 첫사랑이 풋사랑인 건, 단지 어려서였을까 아니면 소통에 서툴러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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