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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1. 2015

자신과 화해한 남자




#10. 자신과 화해한 남자
: 비폭력 대화의 시작





늘 어두워 보이는 40대 남성분을 대화모임에서 종종 만나곤 했다. 저 분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늘 저렇게 시무룩한지 궁금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분의 얼굴에 밝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오늘 낮에 뭐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 그에게 물었지만 별다른 일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주 후,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이 밝게 변하게 된 계기를 비로소 듣게 된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부모님은 투박했던 옛날 사람들이라 자녀교육에 있어서 섬세함이 부족했다. 무슨 일을 하든 부모님은 늘 어린 그를 혼냈고, 주눅이 든 채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날, 그는 앞구르기를 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앞으로 똑바로 굴렀는데 자기만 옆길로 새 버렸다. 매트 밖으로 굴러가는 그를 보고 아버지는 호되게 나무랐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아, 그것 하나 제대로 못 구르냐?” 그는 그때 아버지의 격양된 목소리, 뜨겁던 태양, 매트의 질감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낙인으로 남았다. 그 사건 후로 그는 더욱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아이가 됐고, 그런 모습으로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의 소심함은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최고조를 찍었다. 발표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두통과 복통에 시달렸고 이 스트레스 때문에 심지어 병까지 얻었다. 여러 합병증을 얻고 나니 도저히 이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떨림은 여전했지만 당당한 ‘척’ 말하는 방법은 조금씩 터득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음의 어둠이었다. 마음의 어둠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내가 아버지가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막상 자녀들을 대할 때면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했다.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도 지쳐갔다.   


그러다 우연히 그는 ‘비폭력 대화 센터’를 알게 됐다. 그곳에서 비폭력 대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녀들과 부드럽게 소통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자신의 내면이 치유됨을 느꼈다. 알고 보니 비폭력 대화라는 것이 타인과의 대화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도 폭력성을 없애주는 훈련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폭력적인 대화를 하고 살았단 걸 깨닫고는 하나씩 바로잡아갔다. 그동안 풀지 못한 내면의 욕구와 치유하지 못한 상처들이 하나씩 드러났고, 차분하게 그것들을 다독였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점점 자녀들과의 관계가 회복돼 갔으며, 자기 자신에게도 친절해져갔다. 


더욱 놀라운 건 비폭력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발표하는 일이 덜 긴장됐다는 것이다.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자존감을 높이면서 무대울렁증도 조금씩 극복된 것이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자 생활에 활력이 넘쳤고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그를 변화시킨 비폭력 대화가 무엇인지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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