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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04. 2015

말 버리기 연습

버려야 드러나는 것




#18. 말 버리기 연습
: 버려야 드러나는 것



"그 감독... 못 버려서 망했어."

영화기자로 일할 때 '업계 소식'이 종종 들려오곤 했다. 내가 들은 말말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못 버려서 망했다'란 일곱 글자였다. 무언가를 만드는(作) 사람이라면 뜨끔할 정도로 공감되는 한 마디. 버려야 좋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못 버리는 마음. 기자가 기사 한 꼭지를 쓸 때도 버려야 할 문장 앞에서 몇 분이나 망설이는데 하물며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어떠할까. 스마트폰 사진첩을 정리할 때도 휴지통을 향하는 검지 손가락이 이렇게나 머뭇거리는데 하물며 영화를 찍는 감독들이야 오죽할까. 그 심정 잘 알지만, 그렇다. 못 버리면 망한다. 


전에 인터뷰를 나눈 어떤 감독도 이런 말을 했다. "OO배우 눈빛 연기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못 버리겠는 거예요. 그래도 어떡해요... 편집을 해야 영화가 완성되는데. 밤에 혼자 편집을 하면서 찍은 장면을 버리는데 진짜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눈물까지 흘렸다는 감독의 말에 '아... 무언가를 버린다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지'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는 영화를 볼 때 쭉쭉 늘어지는 부분이 나와도 쉽게 비난의 말을 뱉지 못했다. '저 감독... 차마... 그 일을 못했구나' 대신 연민 같은 짠한 마음이 남을 뿐이었다. 


말도 다르지 않다. 버려야 좋은 스피치가 된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 도중에 자꾸만 '좋은 생각들'이 끼어든다. 그래서 한 길로 잘 직진하다가도 중간중간 끼어드는 '좋은 생각들'을 말로써 다 내뱉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좋은 생각, 좋은 이야깃거리라고 해도 말하는 주제에서 벗어난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말을 버리는 것은 생각을 버리는 일 만큼이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말을 못 버리는 첫 번째 이유는 화자의 욕심 때문이고, 두 번째는 순발력이 부족해서다.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인지 아닌지를 짧은 순간에 판단해내는 민첩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글을 쓸 때는 이리저리 써보고 지워보고 고쳐보면서 매만질 수가 있지만 말이란 건 음악처럼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에 하나의 주제만 담기게 해야 하며, 주제를 희미하게 만드는 다른 곁가지들을 순발력 있게 쳐내야 한다. 그런 말들을 버려야만 이야기의 주제가 하나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욕심을 버리는 일이야 의지의 문제이기에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판단의 순발력을 키우는 건 방법이 없을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글 쓰는 연습을 하면 말할 때의 순발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쓴다면 전체 글의 흐름을 수시로 확인해가면서 하나의 주제에 맞게 통일성 있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런 글쓰기 작업을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바라보는 능력,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면 말을 할 때에도 전체 흐름을 가늠하고 곁가지를 쳐내는 순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글이든 말이든 영화든,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좋은 작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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