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담화는 마음의 보다 즐거운 향연이다.
- 호메로스
H:humanity 인간성
[chapter 6]
철학자 강신주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일정이 보통 늦게 끝나요. 밤에 강연이 많으니까요. 밤 10시~11시쯤 집에 들어가면 굉장히 헛헛한 느낌이 들어요. 그냥 막 소처럼 일하다가 쓰러지는 게 가장 슬프잖아요. 그래서 여기 서재에 들어와요. 일단 무조건 들어와서, 글 쓸 게 있으면 보통 4~5시까지 여기서 쓰고, 만약에 이제 글 쓸 게 없거나 피곤하면 음악을, 교향곡 2곡 정도 들어요. 그거 들으면 좀 인간답게 해가지고, 들어가 자기도 하고요.” 그의 말 마지막 한 구절이 가슴에 콕 박혔다. ‘좀 인간답게 해가지고.’
인간답게 사는 것. 사람이 주어진 제 삶을 살아갈 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일에 치여 살다 보면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땐 아무리 피곤해도 영화 한 편을 보거나 그림을 보거나 기타를 치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언제나 내 편인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취미'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을 '인간답기 위한 몸부림'이라 부르고 싶다. 빡빡한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러 추운 거리를 나서고,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 한 권 골라드는 일. 이 모든 것은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치고 소모됨을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 '좀 인간답게 해가지고' 인생의 다음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나는 카페에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특히 내가 인간임을 느낀다. 손 앞에 커피 한 잔을 놓고, 또 그 앞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앉히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세상으로부터 손상된 나의 인간성이 회복돼 감을 느낀다. 내 마음속의 것을 털어내고 상대의 마음속의 것도 털어내서 테이블 위에 한 가득 펼쳐놓고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서로서로 둥글려서 다독거릴 때, 비로소 느끼는 것이다. 그래, 나는 무언가를 위해서 달리기만 하는 로봇이 아니라 심장이 뜨겁게 뛰고 있는 인간이었지 원래.
말을 하고 말을 듣는다는 건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활동이다. 대화를 권한다. 적당히 푹신한 카페의 의자도 좋고, 딱딱해서 엉덩이가 배기는 선술집 나무의자도 좋다.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난 평일 저녁도 좋고, 아무 긴장 없는 일요일 오후 시간도 좋다. 대화는 사람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또한 대화는 인간이 무언가를 열매 맺게 해준다. 옛날 철학가들도 독일의 허름한 카페에서, 프랑스의 길목 모퉁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사상을 숙성시켰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개조된 신촌 연세대 앞 '독수리 다방'에서도, 여전히 허름하게 제 모습을 간직한 대학로의 '학림 다방'에서도, 단골이었던 그 옛날 문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눴고 사유의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렇게 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가장 인간다운 시 한편을 남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