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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11. 2015

상처 입은 치유자

자신의 결점에 솔직해지기




나에게 있어 최고의 승리는 있는 그대로 살 수 있게 된 것, 자신과 타인의 결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 오드리 헵번






#11. 상처 입은 치유자
: 자신의 결점에 솔직해지기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소심했다. 초등학생 때 준비물을 깜박하고 안 가져가는 날이면 교실 안의 모든 것이 그 준비물로 보였다. 어느 날은 트라이앵글을 안 가지고 갔는데 음악시간 전까지 나의 시선은 쉼 없이 친구들의 트라이앵글을 쫓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서랍에서 삐져나와 있는 트라이앵글을 볼 때마다 절망스러웠다. 저 트라이앵글이 지금 이 순간 내 책상 위에도 있을 수만 있다면! 내 모든 캐릭터 스티커를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절망 속에서 나는 결국 희망을 발견한다. 나처럼 트라이앵글을 안 가져온 친구를 찾아낸 것이다! 그때의 심정이란, 단박에 달려가 그 친구 옆자리에 꼭 붙어 앉아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 스티커를 준 다음, 그 친구와 트라이앵글의 부재가 주는 불안과 아픔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음악 시간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준비물 안 가져 온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보라 하신다. 그때 나는 부끄럽고 조금 무서웠지만 그 친구를 바라보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나의 8년 인생에서 이렇게나 외로운 순간에 그 외로움을 공유할 친구가 있어서 더는 외롭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게 트라이앵글을 가지고 온 친구 옆에 앉아서 그걸 빌려서 번갈아가며 연주하게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트라이앵글을 안 가져온 나의 동지와 저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훨씬 나은 일이라고.


고등학생 때는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다. 여자 주인공이 맨발로 거리에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신발을 벗어서 여자에게 신겨주는 대신에 자신도 똑같이 맨발을 하고 옆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자 준비물이 없던 어린 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아픈 사람에게는 안 아픈 사람의 위로의 말보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의 존재가 더 큰 위로가 되는 법이다.  


대학생이 되어서 헨리 나우웬 신부가 쓴 <상처 입은 치유자 wounded healer>란 책을 읽게 됐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 중에는 정신적으로 많이 방황하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그렇지 않은 상담가들보다 환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담과정에서 치료자의 상처와 환자의 상처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트라이앵글을 안 가져온 그 친구는 그러고 보니 내게 '상처 입은 치유자'였던 것이다.


9년 동안 스피치 동호회에 참석하며 이 개념에 대해 확실히 인정하게 됐다. 처음에는 발표력 향상을 위해 동호회를 찾았지만, 타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나중에는 단지 그런 이유로 스피치 모임에 계속 나오는 분들도 많았다. 나 또한 그랬다. 누군가가 자신의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나의 힘든 시간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나의 아픔과 전혀 다른 모습의 아픔일지라도 다른 사람들도 다 아프게 산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로도 위로가 된다는 점이었다. 40대 후반의 한 여성연사님도 이런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한번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위로차 봉사활동을 갔는데 어쩌다 보니 자신의 힘들었던 지난날을 이야기하게 됐다. 그런데 그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시며 “어떻게 그렇게 살았어요?”하고 묻더란다. 그러면서 “오늘 큰 위로가 돼 줘서 고마웠어요”하고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은 그들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건넨 적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 결점, 상처와 아픔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가장 품위 있는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함에도 급이 있다면, 남의 결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저급의 솔직함이요, 자신의 결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타인을 치유해주는 고급의 솔직함이다. 이런 솔직함 뒤에는 상처가 아닌 감동이 남는다. 누군가가 아파하고 있다면, 섣부른 위로의 말 대신 나의 아픔을 하나쯤 말하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솔직함이 아직도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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