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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13. 2015

사과는 빠르게

진실과 거짓이 싹트는 곳



사과는 빠르게, 키스는 천천히, 사랑은 진실하게, 웃음은 조절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너를 웃게 만든 것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말 것.

                                                                                              - 오드리 헵번




                                                     


#15. 사과는 빠르게
: 진실과 거짓이 싹트는 곳




빠르게 사과하는 사람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일전에 한 건물 안에서 코너를 돌다 중년의 여성과 살짝 부딪힐 뻔했는데 그분이 내게 아주 재빠르게 사과했다. 손쓸 수 없이 재빨랐다. '미안합니다.' 정갈하고 겸손한 다섯 글자가 지척에서 귓속으로 콕 박혀왔다. 너무 순간적이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 그때 정말 그분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녀와 난 부딪히지 않았고 단지 부딪힐 뻔한 것인데, 비일비재한 그런 상황에서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한 적도, 받은 적도 거의 없었단 걸 알았다. 걷다 보면 그런 일은 자연현상과도 같았고, 사과는 과한 것이라 여겼. 하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한참 손윗사람의 그 중년 여성에게서 무척 좋은 향이 났기 때문에 나도 재빠르게 사과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럼 내게도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아서.  


사소해서 실없기까지 한 이런 생각은 문득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어린이였던 당시의 내게는 굉장히 분한 일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조금 분하다. 마트였고 계산대의 줄이 길었다. 나는 물건을 계산하려고 줄을 서 있었는데 앞에 선 여성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모르고 내 발을 세게 밟았다. 내가 '아야'하자 그 아주머니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휙하고 몸을 돌리는 동작과 동시에 그녀의 입술은 '죄송합니다'의 첫 글자를 말하기 위해 오므려지고 있었다. 나는 그 입술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끝내 듣지 못했다. 뒤를 돌아본 아주머니의 고개가 작은 내 키를 따라 순식간에 내려오더니, 자신이 발을 밟은 사람이 어른이 아니란 걸 알고는 다시 휙 하고 몸을 돌려버렸다. 성가시다는 표정만을 남겨놓고는. 나는 그때 딱 한 가지 생각만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크면 나는 저런 어른이 안 될 거다.'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는 모습은 얼마나 인간적이던가. 나는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도, 신문이나 TV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간적인 그 모습을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혹은 자신의 집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자존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함구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나 역시도 비겁하게 그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버젓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에, 우리가 함구하거나 우긴다고 해서 진실의 귀퉁이 하나 바꿀 수 없단 것을 잘 알고 있다. 거짓은 언제나 진실을 재빠르게 인정하지 않는 느린 틈새에서 싹을 틔우고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틀렸다'란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미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내 입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셈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겸손을 배제한 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것 역시도 거짓의 씨앗을 품고 있다. 개인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것이 9시 뉴스라면? 당당히 존재하는 진실을 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보도를 정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뉴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단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9시의 거짓말. 그것은 슬픈 비인간성이다.


우리가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기 위해선 늘 겸손하게 깨어있어야 한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마음의 자세는 겸손이란 망루 위에서 철저히 거짓을 감시하고 그것이 우리 삶을 침략하지 않게 보호한다. 연암 박지원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이야기를 예로 들며 이러한 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나서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다'고 자신 있게 설명하지만 그건 코끼리의 다리일 뿐이지 전체의 모습이 아니다. 진실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에서조차 내가 틀릴 수 있단 여지를 남겨놓는 겸손한 태도야말로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는 일과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그 남겨둔 여지로부터 발견해낸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재빠르게 사과하는 일, 향기가 났던 그 중년 여성처럼 서로가 똑같이 틀렸을 때조차 머뭇거림 없이 먼저 사과하는 용기.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인간성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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