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메이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화신 Oct 14. 2015

영화제목이 뭐가 중요한가요



영화제목이 뭐가 중요한가요
(진실을 말하는 타이밍)




“‘진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잘못 알거나 오해하는 것보다 항상 좋은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 이진경, <삶을 위한 철학수업> 中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인턴>을 보면서 눈에 들어왔던 건 ‘진실을 말하는 타이밍’이었다. 줄스(앤 해서웨이)는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지만 그것을 남편에게 바로 말하지 않는다. 벤(로버트 드니로) 역시 줄스의 남편이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그 말을 두 사람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민한다. 줄스는 자신과 남편 사이에 보다 적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그녀의 인내는 성숙했다. 또한 벤은 부드럽고 간접적인 말 속에 뼈를 담아 줄스의 남편에게 건넴으로써 그가 제 힘으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유도한다. 벤의 조심성은 품위 있으면서도 사려 깊었다. 줄스와 벤은 기다림이란 배려를 남편에게 베풀어 기회를 주었고 결국 줄스의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먼저 용서를 구한다. 아내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외도를 고백할 때, 사실 아내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기다려줬다는 것을 알고서 더욱 깊이 참회한다. 실제 이런 상황라면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다그치는 일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란 생각을 했다.


진실은 진실 그 자체만큼이나 그것을 말하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말하는 진실 속에는 현명함이 깃들어있다. 에밀 졸라가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여명)>지에 발표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는 얼마나 멋진 타이밍의 진실이었던가.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에밀 졸라는 격문을 통해 독일 간첩누명을 쓰고 투옥됐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만인에게 밝혔다.


진실을 말하는 타이밍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또 있다. 진실이라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세상에는 알아서 좋을 게 하나 없는 진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실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때도 있다. 혜민 스님은 “정확한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좋은 말이다”고 말씀했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진실과 사랑이 늘 한 몸은 아니다. 사랑을 위해 진실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기에 우리는 때론 진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해주는 지혜를 가지고자 한다.


대학생 때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은 나이가 지긋하신 고객이 티켓을 끊기 위해 내게 이것저것 물으셨는데 영어로 된 영화 제목을 자꾸 잘못 말하셨다.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바로잡아줄 것인지 그냥 둘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고쳐주지 않기로 했다. 그 노신사가 영화 제목을 정확히 아는 것이 별로 중요한 일처럼 생각되지 않아서였다. 영화 제목이야 상영관에서 자막으로 뜨게 되면 제대로 아시게 될 터인데, 굳이 노신사를 무안하게 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낳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건 기분 좋게 영화를 관람하는 일이니까. 그때의 내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알고 살아야 하는 걸까?”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한다는 건 더없이 당연한 인간의 의무이지만, 이보다 높은 차원의 의무는 사랑이 아닐까? 진실을 들추는 것이 오히려 사랑에 반대되는 행위가 될 때에는 차라리 알고도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진실에 묶이는 것보다, 진실 위에 서는 게 더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우가 되고 싶은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