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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6. 2015

미소 짓는다는 것의 의미




미소 짓는다는 것의 의미
(미소, 희망이 사는 곳)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내 임무는 작품이 훼손되지 않게 지키는 일이었다. 한 노작가의 다큐사진전이었고, 1965년경 찍은 6.25 전후 혼혈 고아들의 흑백사진이었다. 전시가 운영되는 두 달간 나는 그 사진들을 바라보는 일 외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초가을에 시작해 만추가 될 때까지 두 달간, 그것도 거의 하루 종일 사진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전시가 끝날 때쯤 알았다. 똑같은 작품을 오랫동안 천천히 깊이 바라보는 행위가 어떤 것을 가져다주는지. 그건 사진 속 인물과 내가 매일매일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처음 우리의 대화는 피상적이고 일방적이었다. ‘고아들아, 너희 참 불쌍하구나.’ 사진에 대고 내가 일방적으로 말했고, 그러면 사진 속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한 달 더하기 보름.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내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침묵을 뚫고 내 영혼 속으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점점 소통해나갔다. 두 달째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아이들이 짊어진 외로움의 커다란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외로움은 자신을 돌봐줄 엄마가 없다는 외로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고독을 지니고 있었다. 외국인 참전 군인과 한국인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버려진 홀트씨 고아원의 이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갈 이곳 한국이 자신을 품어주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무서운 지 운명 앞에 놓인 그 벽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이미 직감으로 자신 앞에 준비된 슬픔을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한 사진 속에서 유독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와 나는 특히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매일 그 아이의 미소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저 아이는 잘 살아갈 수 있겠다’ 하고 안도했다. 그 고아의 세상없이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 이 삶이 아무리 구차하고 비참해도 반드시 희망이란 게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희망이 사는 곳은 인간의 미소 속이라고 그 고아가 가르쳐주고 있었다. 순간이라 하여도,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존재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타인을 향해서 환하게 미소 지어주는 일. 그것은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가장 귀한 희망을 그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이다. 영혼에 가닿는 말? 아니, 영혼에 먼저 가닿는 건 말이 아니라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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