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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3. 2015

행간을 읽는 힘, 침묵을 듣는 힘




행간을 읽는 힘, 침묵을 듣는 힘
(말과 말 사이에 영혼이 머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 생떽쥐베리 <어린 왕자> 中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숨은 감정이 폭풍우처럼 소용돌이치는 걸 느낀다. 내게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하는 그림은 사진처럼 ‘정확한’ 그림이 아니다.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대신, 자신이 받은 인상대로 재구성하고 왜곡한 그림,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그런 그림을 볼 때면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영혼에 닿는 말이란 있는 그대로를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령 “나는 지금 슬프다”라는 정확한 표현보다 “창밖의 나무들이 울고 있는 것 같다”는 왜곡되고 숨겨진 표현이 오히려 슬픈 마음을 잘 담아낸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가장 중요한 말 또한 말 너머에 있다. 


누군가 말하길, 글을 감상한다는 것은 행간에 담긴 마음을 보는 일이라고 했다. 말도 마찬가지로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읽어내는 것이 더욱 진실한 소통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담기에 어쩌면 말이라는 그릇은 너무 작아서, 그 행간에 담긴 침묵 속에 더욱 진실한 마음이 깃드는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달이 참 밝구려”라고 말했다면, 그리고 이 남자가 매우 부끄럼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어쩌면 그것이 여자를 향한 사랑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을 잘 듣는 것보다 입 밖으로 차마 나오지 못한 말을 듣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며 영혼의 소통이다. 


그래서 우리가 감정이 극에 달하면 “말이 안 나온다”고 하나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말보다 침묵의 대화가 더 진실하다고 하나보다. 그래서 직접적인 사랑고백보다 때론 한 편의 시를 건네는 것이 더욱 가슴 떨리는 일인가 보다. 그림과 음악과 시. 모든 예술의 특징은 “A는 어떠하다”고 명료하게 표현되는 방식을 쓰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더 정확하고 진실하게 표현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행간에 진실을 담는 일이 예술이라면, 예술처럼 아름다운 말은 침묵 속에 진실을 담아내는 말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영혼이 머무는 곳은 말 속이 아닌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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