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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Oct 23. 2015

독설을 받아들이다

+ chapter2. peace



고통은 끌어안아야 비로소 누그러드는 것이다.


                                                                          - 타네다 산토카






#8. 독설을 받아들이다
: + chapter2. peace




어느 오래된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 있다. '온 세상에 비단 천을 깔려고 애쓰지 말고, 너의 두 발을 비단천으로 감싸고서 걸어라.' 외부 세계를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더 현명함을 이르는 문장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연상되기는 비유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마음의 평화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기, 바깥 세상이 아닌 자신의 내부를 먼저 바꾸는 데서 평화가 시작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바깥 세상은 너무 넓디넓어서 우리가 아무리 비단천을 깔며 발악해도 완전한 안정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내부의 굳건한 안식처를 갖는 것이 한결 마음 든든한 일 이다.


비단천과 일체유심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는 '화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주로 이야기해왔다면, 이번엔 '청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을 것인가 대해 생각하려 함이다. 특히 독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말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 아무리 좋은 말만 들으려 해도 상처받는 말은 피할 수 없는 숙 같다. 살면서 듣게 되는 독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볼 가치가 있. 때론  마디의   인생 바꿔놓기 때문이다. 상처 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타인을 두려워하고 피하 것보다, 어떠한 말이라도 받아들이고 긍정적 결과로 이끌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갖는 편이 더 다. 결국은 스스로 발에 비단천을 대는 일이. 


다음 주제로 스피   다. “당신의 인생을 바꾼 한 마디 말은 무엇입니까?” 나는 연사님들 대부분이 따뜻하고 감동적인 말을 꼽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4명의 발표자 중 9명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독설을 인생을 바꾼 한 마디로 꼽았다. 30대 중반의 남성은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들은 말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공부를 잘했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적이 떨어졌, 그런 그에게 친한 친구 녀석이 말했다. “초등학생 때는 네가 신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별거 아니네!” 자존심을 건드는 말 듣고 매우 마음이 상한 그는 ‘내가 이 친구보다는 좋은 성적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결국 그 친구의 독설 덕분에 성적이 올랐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40대 여성의 스피인상 깊었다. 20 초반에 첫 직장에 입사 그녀는 일에 대한 별다른 열정도, 직업의식도 없었.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주어진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본 한 선배가 "너 그냥 회사 때려치워"고 따끔하게 말했고,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드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그런 말을 두 번 다시 듣지 않겠노라고 결의에 가까운 다짐을 했다. 그 후 그녀는 적극적으로 일했 지금은 회사의 유일한 여성리더 자리까지 올랐다.


끝으로 60대의 남성 연사님의 사연이다. 오랜 투병 생활의 영향인지 그는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의사가 들여다보고는 성의 없는 말투로 “이건 약 먹어서 치료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말하지 말고 사세요”라고 하더란다.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큰 문제인데 그것을 별일 아닌 듯이 말하는 의사의 태도에 그는  충격을 다. 그래서 병원을 나와 다음날 무작정 산에 올라갔다. 산에서 그는 몇 날 며칠을 고래고래 소리 질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위의 세 사람들은 독설에 상처받고 스스로를 못난이 취급하는 대신에, 독설을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단신을 신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독설을 긍정적인 자극제로 삼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앞서, 독설을 일단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독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상대의 독설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난의 말을 피하지 않고 대면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말이든 그것을 듣는 일, 즉 받아들이는 일을 해야 다음의 처리도 가능하다. 그 독설이 가치 없는 단순 비방이라면 공을 받아치듯 다시 쳐내면 될 것이고, 나의 단점에 대한 따끔한 라면 자극제로 삼아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  것이다. 위의 세 연사님들은 독설을 일단 받아들인 다음 긍정의 방식으로 당신의 말이 틀렸단 것을 증명해냈다.   


독설을 받아들인다는 건 독설에 담긴 감정적 고통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불안, 두려움, 고독함 등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그대로를 당당히 받아들이는 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이 된다. 감정이란 피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저항이 커져서 더욱 마음 붙기 때문이다. 외면하려 애쓰면 집착과 괴로움이 점점 커지지만, 받아들이려 애쓰면 당장은 괴로워도 차츰 누그러진다. 비단신을 신고 걷는 마음으로 독설이든 조언이든 충고든 일단 타인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거부할 때보다 오히려  편안해짐 느낄 것이다. 그다음 그것을 긍정으로 바꾸는 건 자신의 추가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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