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3. energy
옛사람의 발자취를 좇지 말고, 옛사람이 좇던 것을 좇아라.
- 마츠오 바쇼
#10. 기성관념을 버리다 2
: + chapter3. energy
기성관념을 버리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면 말에도 오리지널리티가 생긴다. 그런 말은 진정성이 있고 힘이 있다. 50대 후반의 한 남성연사님의 사연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와는 생이별을 하여 홀로 남겨졌다. 겨우 국민학교만 졸업한 그는 실패자처럼 허송세월을 하며 막연하게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단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던 중 동네 형이 자신에게 진지하게 한 마디를 건넸는데 그 말이 이 연사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 이 한 마디였다. 공부할 시기는 이제 다 지나버렸다고 포기하고 있던 그는 운명처럼 다가온 말 한마디를 딛고서 다시 일어섰다. 혼자 공부를 시작했고,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남들보다 정확히 5년 늦은 나이로 말이다. 그는 후에 국가시험에 통과해 현재 법원에서 일하고 있다.
기성관념을 버린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힘이 세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는 동네 형의 말은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기성관념을 무너뜨린 한 마디였다. 형은 '학업의 시기'에 대해 당시의 사회에 만연한 관념을 거부했고 '학업은 늦게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주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어렸던 연사님은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기성관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 못 하고 있었고, 형의 말 덕분에 그 기성관념을 부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50살이 넘은 그를 아직도 이끌어주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늦은 나이에 스피치를 배우러 나온 이유는 그때 들은 '공부에는 때가 없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기성관념을 벗는다는 건 무조건 기존의 관념을 거부하거나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성관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해본 다음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심청이는 효녀다'라는 기성관념이 있다면 '정말 심청이는 효녀일까?'하고 스스로 묻고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심청이가 효녀라고 하지만 눈 먼 아버지를 살리겠다고 목숨을 버린 건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오히려 살아서 아버지 곁을 지키며 보살펴드리는 것이 더 나은 효가 아니었을까?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뜬다고 한들 가장 보고 싶었던 딸이 자신 때문에 이미 죽고 없는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므로 <심청전>은 효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바람직한 걸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기성관념을 허무는 과정이다.
심청이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고, 베짱이의 라이프 스타일을 옹호하고, 흥부의 염치없음을 비난하는 것. 이렇게 이미 형성돼 있는 관념을 자신의 관점을 활용해 검수하는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인문학을 읽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문학,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을 읽는 건 세상의 뿌리와 인간의 본질을 향해 점점 파고들어가는 일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모든 기성관념들과 하나하나 부딪히는 일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를 의심하기 시작한 윈스턴처럼, 영화 <트루먼 쇼>에서 허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거기서 나와 진짜 세계로 들어가는 트루먼처럼 우리도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문학은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것을 의심하고 진짜 세계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동의하는 기성관념에 대해선 구체적인 자신의 근거를 마련하게 하고, 동의하지 않는 기성관념은 과감히 부수게끔 한다.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많은 지식을 갖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관점과 나의 생각을 가지는 일이다. 지식은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주지만 때로는 우리를 옭아매어 사고의 틀에 갇히게 하기도 한다. 지식도 하나의 기성관념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옛사람의 발자취를 좇지 말고, 옛사람이 좇던 것을 좇아라'고 마츠오 바쇼는 말했다. 인문학은 우리가 가진 지식이 우리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아닌, 세상을 자유롭게 날게 해주는 날개가 되도록 돕는다.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줌으로써 말이다.
발표를 하다 보면 이론의 틀을 내게 갖다 씌우려는 연사님을 가끔 만나곤 한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는 투로 이렇게 묻는다.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느 철학자의 이론이고 어떤 책에 나와있느냐?"하고. 그럴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당연히 들어보신 적이 없겠지요. 이건 나의 생각이고 나의 이론이니까요. 그런데 왜 당신은 우리 스스로가 이론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시죠? 우리가 접하는 모든 철학들도 옛날 누군가의 창작물이 아니던가요?' 그렇지만 입 밖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옛사람의 발자취를 좇는 것만 옳다고 믿는 사람과는 창의적인 대화가 힘들 것 같아서다. 기성의 지식만을 따르는 사람은 기성관념을 버리는 것 또한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