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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7. 2015

나다움, 우리가 스피치를 하는 이유

개성이 없다면 영혼도 없다



"내가 각하 성공이란 당신이 자기 자신을 보살필 수 있다 느끼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필요도 없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이다. 자신을 더 이상 문밖에 세워둘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진정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배우 틸다 스윈튼, 백지영의 '피플 인사이드' 중






#14. 나다움, 우리가 스피치를 하는 이유
: 개성이 없다면 영혼도 없다



왜 우리는 스피치를 하는 걸까. 좋은 스피치는 뭘까. 스피치는 왜 배우는 걸까. 스피치를 시작하고부터 9년 간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은 의문 세 가지다. 이런 의문이 계속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학교나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잘 해내고,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를 잘 꾸려나가기 위해 스피치를 한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 우리에게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이게 뭘까.


9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요즘에서야 그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려고 애쓰는 이유,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느낀 것들이 마음 안에 가득 찼을 때 그것을 밖으로 쏟아내고 싶어 한다.  물 잔에 물이 가득 차면 넘쳐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찍고 스피치를 한다. 그렇다면 세 가지 의문 중 일단 첫 번째는 답을 찾은 것 같다. 우리가 스피치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학교나 회사에서 받은 과제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나아가서는 결국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외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그러면 두 번째 의문. '좋은 스피치란 무엇일까'를 풀어볼 차례인데 이건 어렵지 않다. 첫 번째 의문 '스피치를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은 이상 저절로 풀리는 문제다.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스피치를 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좋은 스피치란 '나다운' 스피치다. 누구의 생각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 알고 누구의 스타일도 아닌 오직 나만의 스타일로 나답게 말하는 것. 오롯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치. 좋은 스피치란 이런 것이다. 청중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꽁꽁 포장하는 대신 자신의 결점, 상처, 후회, 실패까지도 그대로 드러내 보일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스피커가 될 자질이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의문. 대체 사람들은 왜 스피치를 배우는 걸까? 사실 처음엔 이 의문이 나로써는 가장 당혹스러웠다. 스피치를 잘 하려고 스피치를 배우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말한다면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의문을 풀고 난 지금은 스피치를 배우는 것에 대한 의문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그건 보통의 스피치 교육이 나다운 스피치를 할 수 있게끔 가르치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복식호흡을 배우고 발성 발음을 연습하고 서론 본론 결론에 맞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많은 스피치학원의 수업 방식은 과연 나다운 스피치를 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스피치 공식에 맞는 스피치를 하기 위한 것일까.


결점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통 스피치 교육의 방식이다. "당신은 ㅅ발음이 새니까 ㅅ발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당신은 목소리가 너무 작고 복식호흡이 안 되고 있어요."  모범적 틀에 맞지 않는 것은 없애야 좋은 스피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ㅅ발음이 좀 새도 괜찮지 않나? 그것도 그 사람의 개성 아닌가? 좀 웅얼거리듯 말하는데도 굉장히 집중되는 스피치도 있던데? 또박또박 논리정연 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스피치의 기본 틀이지만 분명 그 틀에 완벽히 부합하는 스피치를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건 왜일까. 그런 스피치는 과연 좋은 스피치일까?


개성이 없는 스피치는 영혼이 없는 스피치다.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말은 정해진 규격에 맞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장 잘 묻어나는 나다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잘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 솔직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꾸며내거나 검열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스피치만이 청중의 마음을 흔들고 감동을 준다. 그러므로 스피치 교육은 그 사람의 개성을 지워내는 게 아니라 개성을 찾아주고 극대화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답으로 세 번째 의문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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