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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8. 2015

흘려보내기

그것이 마음을 지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것




#5. 흘려보내기
: 그것이 마음을 지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것



불교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위빠사나를 배웠다. 불교에서 말하는 '위빠사나'는 '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이라고도 불리는데, 쉽게 말해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고 지나가게 하는 수행법이다. 마음의 고요한 자리에 머물며 그저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마치 극장 관객석에 앉아 마음이라는 무대 위에 배우들이 올라와 한바탕 춤을 추고 퇴장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과 같다. 절대 무대 위로 올라가 개입해선 안 된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위빠사나(vipassanā, 觀)란 세간의 진실한 모습을 본다, 혹은 분석적으로 본다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분석이란 편견이나 욕구를 개입시키지 않고 현상을 현상 자체로 본다는 뜻이다. 즉 고요한 상태(samatha, 止)에 들어선 후,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성 소멸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을 말한다. 위빠사나 수행은 초기불교 때부터 중요시되어왔으며 붓다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알아차리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마음의 불안이나 근심도 일어났다가 사라질 때가 되면 사라진다. 그것을 흘러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모든 것은 흐른다’는 건 자연의 대법칙이다. 스피치를 할 때도 ‘떨지 말자. 떨면 안돼’ 하고 무언가를 바꾸려 하는 노력 자체가 떨리는 감정에 밥을 주는 꼴이다. 밥을 실컷 받아먹은 떨림이라는 괴물은 점점 덩치가 비대해져서 스피치를 망치려 든다. 괴물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 '위빠사나'로 대처하면 그만이다. 떨리는 감정이 내 마음의 무대 위에서 제멋대로 날뛰다가 퇴장하는 것을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면 된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떨린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위빠사나 하라. ‘지금 내 마음은 긴장하고 있다. 떨고 있다.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고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은 하얗게 굳었다.’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마치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관찰하고 설명하듯이 말하라. 그리고 준비한 내용을 그냥 발표하라. 떨려도  계속하라. 그저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리면’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안전지대에 머물러야 한다. 안전지대는 당신의 ‘참 나’이다. 떨리는 감정이 당신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의 근본 된 자아이지, 일어났다 없어져버리는 떨리는 감정이 아니다. 당신은 호수 전체이지 호수의 수면이 아니다. 수면 위로 ‘떨림’이라는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면 수면에 파장이 일뿐 호수 아래 깊은 곳은 여전히 고요하다. 당신은 작은 돌멩이 하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무시할 수 있는 호수 전체이다. 모든 파장은 처음에 강한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잠잠해지는 법이다.


‘마음’은 결코 ‘나’가 아니란 걸 강조한다. 마음과 나를 동일시했을 때 ‘내가 왜 이러지’, ‘난 바보야’, ‘이 멍충아’ 하고 자신의 자아 전체를 비난하게 된다. 대신 이렇게 말해라. ‘나는 편안하게 발표하고 싶은데 내 마음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고 있구나. 하지만 마음은 떨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하겠다.’ 당신은 떨림보다 위대한 존재다.


한 스님이 법회를 앞두고 너무 떨려서 마음속으로 계속 위빠사나 했다. 법회가 시작됐고 스님은 단상에 올랐다. 떨림은 최고조에 달했고 스님은 더욱 위빠사나에 집중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스님은 머릿속으로만 외쳐야 하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떨린다, 떨린다, 법회를 하려니 내 마음이 무척 떨리는구나. 내 마음이 지금 떨고 있음을 지켜봅니다. 내 마음이 떨고 있다. 떨고 있다. 떨고 있다...” 순간 모두가 침묵하며 스님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누군가 침묵을 깨고 박수 쳤다. 곧 우레 같은 박수가 여기 저기서 이어졌다. 사람들은 감동하여 스님에게 말했다. "위빠사나에 대해 참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마음으로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우리도 이 스님처럼 하면 된다. 단, 웬만하면 마음속으로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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