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8년 뚝심의 '월간 윤종신',
그리고 새로운 플랫폼 '리슨'
음악이 휘발되고 있다. 지난 10일 가수 싸이는 기자간담회에서 "시대에 맞지 않게" 10곡짜리 정규앨범을 낸 이유를 해명(?)했다. "요즘 음원시장은 휘발성이 강해졌다"는 진단으로 입을 연 싸이는 "발표하고 두세 시간이면 성패가 갈리고, 며칠이 지나면 수록곡들은 많이 회자가 안 되곤 하는 시대에 이렇게 정규앨범을 들고 나오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다양한 노래를 담아 선보이고 싶어서 정규를 택했다고.
비단 싸이만의 고민은 아니다. 노래를 발표하는 방식에 있어 '정규앨범이 효율적인가?' 하는 질문은 이제 가수들에겐 일상적인 딜레마가 돼버렸다. 정말 그렇다. 정규를 발표하는 가수들을 인터뷰할 때면, 그들로부터 처음 듣는 멘트는 엇비슷했다. "요즘 같이 음악소비 주기가 빠른 시대에 정규를 준비하면서...(긁적긁적)" 물론 공들인 정규앨범을 내놓는 성취감과 보람은 그 어떤 것보다 컸지만, 긁적이는 제스처에선 '고민도 없지 않았다'는 속내가 들리는 듯했다.
스트리밍 시대다. CD가 먹는 건지 입는 건지 잘 모르는 8살도 많다. 요즘의 많은 음악 소비자들은 비교적 비싼 CD를 사기보단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해 저렴하게 음원을 소비한다. 스트리밍이 대세이다 보니, 자연스레 온라인 음원차트 실시간 순위에 목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좋은 노래의 잣대 = 차트 순위'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모바일과 LTE가 초래한 이 거대한 흐름을 거부하는 건 음악의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 그 누구에게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휘발성은 꼭 나쁜 걸까? 공들여 만든 음악이 쉽게 '잊힌다'는 의미에서 휘발성은 슬픈 단어지만, '가벼워진다'는 의미에서 휘발성은 긍정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
가벼워지는 건 '기회'다. 스트리밍으로 대표되는 유통-소비방식, 싱글이나 미니앨범으로 대표되는 생산방식을 두고 가벼워서 나쁘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옷을 가볍게 입었다고 그 사람의 성품까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음악팬들은 새로운 음악을 자주, 손쉽게 접할 수 있어 좋고, 뮤지션들은 '무려' 정규앨범이라는 부담에 심각해져서 어깨에 힘주지 않고도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어서 좋다.
윤종신의 선구안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월간 윤종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올해로 8년을 맞은 월간 윤종신은 다양한 장르,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여러 명곡을 탄생시켰다. 많은 가수들이 "정규냐 싱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이분법적 고민에 빠져있을 때 윤종신은 '싱글'을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이 플랫폼을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싱글(앨범)'이란 단어도 적절치 않겠다. 음식을 만들어 따끈따끈할 때 내놓듯, 노래를 아껴두고 모아두고 포장하느라 그것의 에너지가 식어버리기 전에 단품으로 즉각 내놓는 방식이다.
윤종신의 이 '실험'은 꽤 선구자적이다. 음원차트 실시간 성적에 울고 웃는 현재 가요계에 한 발 앞서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규가 아닌 싱글이란 이유로 마치 휘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달 규칙적으로 발표하는 '월간'이란 정체성 덕분에 휘발성의 부정적 측면은 휘발되고 콘텐츠는 착실히 누적된다. '월(月)'은 굳이 기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年)'으로 묶이고, 테이블 위에 잡지가 쌓이듯 묵직하게 시간과 음악세계를 축적해나간다.
작년 12월, 윤종신은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비정기적으로 음원을 발표하는 음악 플랫폼 '리슨(LISTEN)'의 문을 연 것. 하림을 시작으로, 지난 25일 정오엔 <슈퍼스타K7> 출신 유용민이 부른 'Nobody Knows'를 아홉 번째 곡으로 발표했다.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의 윤종신 대표 프로듀서에게 '월간 윤종신'과 '리슨'을 만든 계기와 지금 시대에 두 플랫폼이 갖는 의미를 물었다. 아래에 그의 서면 인터뷰를 전한다.
- 월간 윤종신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자구책이었다. 과거에 우리나라 뮤지션들은 몇 년을 공들여서 앨범을 준비하고 발표하고 활동한 뒤 다시 사라지는 것이 규칙과도 같았다. 나 역시 그렇게 활동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문득 '나는 매달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짧은 시간만 투자하면 곡을 만들 수 있는데, 왜 몇 년이나 기다렸다 발표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매달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음원을 내보자, 내 방식대로 노래를 발표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월간 윤종신이다."
- 리슨은 월간 윤종신과 어떻게 다르고 왜 만들었는지.
"리슨은 월간 윤종신을 7년 동안 해오면서 얻은 아이디어다.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월간 윤종신이라면 리슨은 미스틱의 실력 있는 뮤지션, 프로듀서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지는 음악 플랫폼이다. 최근 몇 년 간 하루 사이에 음원 차트 성적으로 성패가 갈리는 지표의 선정 방식이 안타까웠다. 뮤지션의 본질은 음악으로 평가받는 게 아닌가? 미스틱 내부에서도 좋은 음악이 계속 쌓여가는데 매번 음악 외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최대한 음악에 충실하고 가볍게 바로바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간 윤종신이 마케팅을 경량화하는 것처럼 리슨 역시 최소한의 마케팅으로 꾸준히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 휘발성 강한 요즘 음원시장에서 월간 윤종신과 리슨이 갖는 의미는.
"월간 윤종신과 리슨을 통해 발표하는 노래들은 음원 차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진입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월간 윤종신을 8년간 유지하고, 리슨을 시작한 이유는 윤종신 및 미스틱의 음악 '성향', '취향'을 좋아하는 리스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래를 던지는 게 아니라 윤종신의 음악 또는 미스틱 색깔의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들에게 맞춤형 음악을 선보이고, 그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리스너들 역시 음원 차트 내 실시간 차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각자 취향대로 음악을 찾아 듣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플랫폼을 통한 음원의 아카이빙 역시 큰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월간 윤종신을 처음 접한 리스너들은 예전에 발표된 음원들을 거꾸로 찾아보게 된다. '오르막길(2012년)', '지친하루(2014년)' 등 예전 음원들이 아직까지도 꾸준히 소비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음원 차트 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리슨 역시 꾸준히 양질의 음원을 발표하여 음원을 아카이빙하고, 향후 리스너들이 스스로 리슨에 보유된 음악들을 찾아 듣게끔 탄탄한 음악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기사입력 17.05.28 16:5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