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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Apr 25. 2017

'밤편지' 대신 반딧불에 담아 보낸 마음




노랫말 행간에 담긴 반어와 역설,
조용한 눈물







'이야기'에서 슬픔이나 기쁨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반어 혹은 역설만큼 강력한 것도 없을 것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려도 그렇다. 나치 아래 학살을 그려낸 비극적 내용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제목을 붙여놓으니 슬픔의 여운은 더욱 길어진다.


노래도 '이야기'의 일종이라면, 반어나 역설로 표현된 곡은 직설적인 노래보다 오히려 감정을 두드러지게 한다. 가령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는 이런 역설의 미학이 잘 담겼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이 가사가 슬픈 건 삐에로가 슬픔을 간직해서가 아니라, 슬픈데 웃고 있어서다.


봄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쓸쓸한 곡들이 많이 발표되는 요즘이다. 특히 여자 솔로 가수들의 신곡으로 가요계는 '봄풍년'이다. 그녀들의 노래를 듣다가 유독 역설적 슬픔의 곡들이 많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태연의 'Fine'부터, 정은지의 '너란 봄', 박정현의 '연애중', 아이유의 '밤편지'까지. 언뜻 듣기엔 상큼한 봄캐럴 같지만 막상 귀 기울여 들어보면 새드엔딩이다.


'안 슬픈 척'... 태연-정은지-박정현



"나는 아니야/ 쉽지 않을 것 같아/ 여전하게도 넌 내 하루하루를 채우고/ 아직은 아니야/ 바보처럼 되뇌는 나/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어/ It's not fine."


태연의 첫 정규앨범의 타이틀곡 'Fine'은 제목과 가사 내용이 정반대다. 이별 후 연인을 잊지 못하는 한 여자의 심정을 담은 노랫말인데, 만약 제목도 내용과 동일하게 'Not fine'이었다면 슬픔이 반감됐을 거다. "너 괜찮아?" 하고 물었을 때 "어, 나 완전 괜찮지!" 하며 환하게 웃어보이는 화자의 안쓰러운 얼굴이 떠오른다. 이런 반어적 제목이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정은지의 새 노래 '너란 봄'도 제목만 들었을 땐 사랑에 빠진 설레는 마음을 담은 곡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노래 역시 가사에 반전이 있다.


"다시 봄이 오려나 봐요/ 벚꽃도 지겨울 만큼/ 또다시 외로운 계절을 만나고/ 부네요 바람은"


화자는 봄을 '외로운 계절'이라 말한다. 일반적으로 봄은 '가장 좋은 계절'이라 불리지만 동시에 봄이 오면 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한 기분을 잘 표현했다. 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감정일 것이다. 마치 '크리스마스 증후군'과 비슷하다. 즐겁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타인과 비교해 나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증상이다. 커플들만 보면 그 밀착된 팔짱 사이를 뚫고 지나가고 싶은 기분. '너란 봄'은 봄풍경이 아름다울수록 더 쓸쓸해지는 아이러니한 심정을 노래한다.


"저 꽃이 너무 예뻐 외롭게/ 저 커플은 또 마냥 환하게/ 웃는 거야 너무 서럽게 만드니/ 왜 아름다운 거야/ 하필 부러울 게 뭐야/ 나만 빼고 봄봄봄"


결국 제목 '너란 봄' 뒤에 이어질 말은 '너란 봄은 날 즐겁게 해'가 아니라 '너란 봄은 날 우울하게 해'에 가깝다. 그럼에도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가사는 외롭지만 멜로디는 행복한 '언밸런스'가 또 한 번의 역설이다. 여기에 더해 정은지란 보컬의 포근한 음색이 위로를 전한다.



박정현이 발표한 '연애중'도 반어적인 노래다. 처음에 제목만 들었을 땐 단단히 오해했다. 저렇게 대놓고 세상 솔로들의 염장을 질러도 되는가, 사랑에 빠지면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건가, 듣지 말까... 뭐 그런 오해들 말이다. 하지만 박정현이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신곡을 어떻게 안 들을 수 있겠는가. 가사만 조심(?)하여 들어보자 하고 들었는데, 노래 안에 반전이 있었다.


노래는 '긴 연애였어/ 나름대로 우린 예뻤어' 하고, '연애중'이란 제목이 과거형임을 밝히고 들어간다. 이어지는 가사는 이렇다.


"자 어떡할까/ 요즘 우리 둘 모습 보면/ 헤어지는 게 맞는데/ 왜 자꾸만 망설일까/ 슬픈 얼굴로/ 의미 없는 연애중"


알고 보니 애정이 식은 커플이 헤어지기 일보 직전에 놓여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처럼, 노래도 제목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닌가보다. 솔로들에게 이 곡은 '염장송'이 아니라 '위로송'이었다.


숨김으로써 드러나는 슬픔... 아이유의 '밤편지'



마지막으로 아이유의 '밤편지'. 이 곡은 위의 노래들처럼 제목과 가사가 반어를 이루는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곡은 감춤으로써 오히려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역설의 노래다. 아이유가 작사한 이 곡은 요즘 가요에서 접하기 힘든 '숨김의 미학' 같은 게 있다. 사실 감정은 넘치는데 그걸 꾹꾹 누르고 눌러 시적이고 정제된 노랫말로 이야기한다. 위의 노래들처럼 '나 안 괜찮아, 너무 외로워, 서러워, 슬퍼'라는 식의 직접적인 감정분출은 없다. 그저 '사랑한다', '그립다' 정도의 담담한 표현에 머문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 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화자는 지금 사랑 중일까, 아니면 이별 후일까? '밤편지'는 떨어져 지내는 연인이 너무 보고 싶어서 쓴 '연애편지' 같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쓴 '이별편지' 같기도 하다. 어떤 경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 점이 바로 이 노래의 매력이다.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이 부분의 가사를 봤을 땐 연인이 '사라져 버릴 것 같지'만 아직 사라지진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를 보면 사실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가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행간이 뮤비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그 편지가 끝내 '부쳐지지 못한 편지'라는 암시가 그것이다. 편지라는 건 발신인의 손을 떠나 수신인의 손에 닿는 것, 설령 닿지 않더라도 부쳐져야 하는 것이지만 '밤편지' 뮤비를 보면 시간이 흐른 후 긴 머리를 한 아이유의 손에 편지는 그대로 들려있다. 계단 아래로 떨어져 풀리는 실뭉치, 어두운 구석에서 멍하니 앉은 아이유의 모습, 깨진 거울 등이 이별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여전히 어떤 면에선 '연애편지'일 가능성을 품고 있다. 정말 이별편지라고 해도 이 곡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사랑에 넘치는 분위기를 띤다. 그렇다면 이 또한 역설인 것이다. "어떻게 나에게/ 그대란 행운이 온 걸까/ 지금 우리 함께 있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요." 이 부분의 가사를 보면 화자는 사랑의 행복감에 넘치며 밝고 희망적이다.


'밤편지'는 화자가 슬픔 한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행복 한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노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화자는 지금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별하여 다시 오지 않을 연인을 기다리는 쓸쓸한 마음 역시 사랑의 감정이다. 외로운 사랑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곡의 가사는 한 글자 한 글자 사이에 넓은 여백이 있다. 그 행간에 자신의 마음을 조용하게 눌러 담았다.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행위'로써 보여준다. 보고 싶다, 그립다란 말 대신 반딧불을 띄워 보내는 행위로 절절하게 그리운 마음을 '숨기면서 드러낸'다. 이렇게 노래는 역설적으로 끝난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 게요/ 음 좋은 꿈이길 바라요"



기사입력 17.04.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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