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 아닌 권지용,
처음 들려준 붉은 속마음
[공연리뷰] 지드래곤 솔로 월드투어 < ACT III, M.O.T.T.E >
지드래곤의 이런 모습, 처음이다. 지드래곤은 스스로 '권지용'이길 바랐고, 인간 권지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3시간 내내 초점을 맞췄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지드래곤의 솔로 월드투어 < ACT III, M.O.T.T.E >의 첫 공연 현장을 전한다. 지드래곤은 이번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아시아, 북미, 호주 등 총 19개 도시에서 투어공연을 이어간다.
내 본명은 '권지용'
지드래곤은 이날 공연이 '지드래곤'이 아닌 '권지용'의 공연이라는 걸 수시로 강조했다. 첫 곡 'HEARTBREAKER'에 이어 'BREATHE'를 부른 후 첫 인사로 다음처럼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지드래곤입니다. 본명은 권지용입니다. 여러분은 인간 권지용의 첫 번째 콘서트를 관람하고 계십니다. 며칠 전에 앨범이 나왔는데 제가 듣기로는 많은 곳에서 1위를 했대요. 사실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적, 마음적으로 힘들었는데 좋은 소식 들으니까 좋더라고요. 여러분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열게 됐습니다. 이번 공연 < M.O.T.T.E >(모테)를 정말 못 할 뻔했어요."
이렇듯 약간의 유머를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앨범 이름도 <권지용>"이라며 "지드래곤이란 이름으로 계속 무대에 서다보니 '권지용이란 아이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저에 대해 스스로 모르는 것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드래곤은 'BUT I LOVE YOU'와 'ONE OF A KIND' 등을 이어 부르며 콘서트의 온도를 끌어올렸다. 이번 공연의 세트리스트는 솔로 지드래곤이 발표한 곡을 예전 노래부터 시간 순서대로 배치했다.
콘서트 이름인 < M.O.T.T.E >에도 '인간 권지용'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MOMENT OF TRUTH THE END'의 앞글자를 딴 이름인데, '진실의 순간' 혹은 '진실 그 자체'를 뜻한다. 지금까지 활동해온 지드래곤, 그 이름 뒤에 있는 서른 권지용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를 담아낸 것. 성공한 가수로서 화려한 삶 너머의 안 보이는 고독을 담아냈다. "전 누구일까요?" 하고 스스로 묻는 지드래곤의 모습이 미리 준비된 영상으로 나오기도 했다.
주변인이 말하는 권지용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부모님, 태양, 대성, 씨엘, 싸이, 정형돈 등 지드래곤의 측근에게 "나에게 지드래곤이란?" 하고 첫 번째 질문을 던진 것. 이에 대한 답변을 들은 후 또 다른 질문이 던져졌다. "나에게 권지용이란?"
이 질문에 지드래곤의 아버지는 "첫 번째 질문과 같은 거 아니냐?" 되물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듯 다른 이 질문이야말로 이번 콘서트의 취지를 함축하는 포인트다. '지드래곤'과 '권지용'에 대한 주변인들의 답변은, 들어보니 달랐다. 무대 위 아티스트 지드래곤은 빛나는 재능을 가진 화려한 존재였고, 한 인간으로서 권지용은 차분하고 정 많고 긍정적인 사람인 듯했다.
씨엘은 "나에게 권지용이란?" 이 질문에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답했고, 태양은 "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말했다. 싸이는 "제가 아는 권지용은 점잖은 양반"이라고 답했고, 권지용의 아버지는 "NO라고 말한 적 없고 항상 YES라고 말하는 아들"이라고 답했다.
아이유와 '쑥스러운' 듀엣
이날 콘서트의 게스트로 아이유가 등장했다. 아이유는 자신의 곡 '팔레트'를 선보였고, 지드래곤은 자신이 피처링한 랩 부분을 소화했다. 노래가 끝나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지만, 둘 다 너무 쑥스러운 나머지 여지없이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그런데 이 어색한 분위기가 오히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줬다.
"제가 피처링을 부탁받고 도움이 될까 싶어 해드렸는데, 아이유 씨가 감사하다며 냉장고를 줬다. 왜 냉장고일까 싶어 열어보니, 제 얼굴이 찍힌 띠가 둘러진 소주가 냉장고에 꽉 차 있더라."
지드래곤이 어색함을 딛고 들려준 '팔레트' 피처링 비하인드 스토리에, 아이유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유는 "군대 갈 때까지 드시라고 소주를 선물한 것"이라며 "군대가기 전에 다 드시려면 열심히 드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권지용은 "그래서 지금도 알딸딸하다"며 재치 있게 답했다.
아이유는 '팔레트' 외에 한 곡을 더 불렀다. 지드래곤의 'MISSING YOU'란 곡으로, 원래 김윤아와 지드래곤이 듀엣으로 발표한 곡인데 이날 아이유가 여성보컬 파트를 맡아 듀엣을 선보였다. 이날 따라 아이유는 많이 긴장한 듯 보였다. 자신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게 처음"이라고 말했고, 지드래곤은 "저 역시 이렇게 많은 인원 앞에서 혼자 무대를 갖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RED'의 메시지
이번 지드래곤 콘서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자 장점은 '무대 예술'이었다. VCR을 통해 '작품'에 가까운 영상들이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윌로 페론(WILLO PERRON)이 작업한 것으로 콘서트의 통일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지드래곤 역시 공연 시작 때 "이번 콘서트의 톤앤매너는 RED"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색을 활용해 쭉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대 영상과 조명뿐 아니라 권지용의 무대의상 역시 붉은색으로 맞춰 디자인만 바뀌었다. 그는 "콘서트 이름이 '모태'(M.O.T.T.E)라서 1차원적으로 핏덩이를 표현해봤다"며 "농담"이라고 웃었지만, 줄곧 피가 등장하는 VCR 영상을 보고 미뤄 짐작하기에 피, 본연의 것을 강조한 듯싶었다. '인간 권지용'을 표현하는 데 붉은색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지드래곤은 공연 후반부에 새 앨범 <권지용>의 수록곡을 들려줬다. 'INTRO.권지용'부터 '개소리' 등을 연이어 불렀고, 이어 제법 오래도록 본인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콘서트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덜 꾸민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지드래곤은 화려하고 많이 과장된 이미지의 가수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무대도 이번에 최대한 단조롭게 하고 세트리스트도 첫 앨범부터 순서대로 짰어요. 마지막으로 갈수록 '걷어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행복하고 감사하고 좋은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힘들고 지친 적도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 순간이 꿈이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달려왔고 (꿈을 이뤄) 기분이 너무 좋은데, 가끔은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모르겠는 상황도 있어요. 그래서 초심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긍정적인 아이니까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제가 '화려한 지드래곤'일지라도 지금 입은 허름한 이 옷처럼 '인간 권지용'의 모습도 늘 함께일 것입니다."
이날 콘서트를 통해 처음으로 '인간 권지용'을 드러낸 그는 군대 이야기도 꺼냈다. "저 내년에 군대가잖아요. 갔다오면 32~33살인데 괜찮겠어요?" 이 질문에 팬들은 환호성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권지용은 잠시 후 앙코르 곡으로 'THIS LOVE', '삐딱하게', '무제'를 불렀다. 특히 '삐딱하게' 무대 때는 관객이 스스로 일어서서 몸을 흔들었다. 공연을 통틀어 가장 뜨겁게 열기가 고조된 순간이었다.
선선한 토요일 밤,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채운 4만 여 팬들은 처음 만나는 '인간 권지용'의 모습에 행복한 표정이었다.
기사입력 17.06.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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