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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2. 2015

고전의 케미스트리

 




고전의 케미스트리
: 내 안의 화산이 폭발하는 날




말이 잘 나올 때 난 이렇게 외치고픈 심정이다. “오, 이 짜릿한 케미스트리!” 가끔 말을 하면서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 안의 모든 지식과 꿈, 열정, 그리고 감성들이 가장 아름다운 비율로 조화를 이뤄내는 기분. 새로운 생각이 내 안에서 꿈틀대고 그것이 입 밖으로 태어나 세상에 밝은 빛을 더하는 기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무르기 위해 세상으로 달려나가는 내 안의 언어들. 이 황홀한 케미스트리!   


실험실 풍경을 상상해본다. 흰 가운을 입고 보호안경을 쓰고 라텍스 장갑을 낀 연구원들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가며 화학실험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체호프, 헤밍웨이, 니체, 호메로스, 조지 오웰, 타고르, 공자, 노자 등이다. 그들은 사이좋게,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회의를 하기도 하고 가장 멋진 케미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실험실을 분주히 들락날락거린다.  

고전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생각의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의 말에 힘이 있는 건 이런 케미스트리 덕분이다. 하나의 생각이 또다른 생각과 사슬로 엮이듯 엮이고 녹아서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을 갖게 한다. 고전은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진리다. 고전이 품고 있는 것들은 우주처럼 깊고 넓다. 고전 안에는 지식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엔 오랜 인간의 꿈과 소망, 내면에 내재된 신화까지 두루 담겨있다. 


말을 잘 하기 위해 화술 책만 열심히 읽는 사람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피아니스트 랑랑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루 8시간 연습을 하지만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준 건 셰익스피어의 문학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피아노 연습만 한다면 그건 피아니스트란 직업을 가진 직업인일 뿐, 예술가는 아니라고 본다. 랑랑이 읽은 셰익스피어는 랑랑의 영혼을 지나 그의 손끝에 내려앉고 그 손끝은 피아노 건반 위를 춤추며 셰익스피어의 영혼을 연주한다. 글로써 읽은 고전은 피아니스트에겐 음악이 되어 나오고, 요리사에겐 요리가 되어 나오며, 작가에겐 또 다른 글이 되어 나온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겐 ‘말’이 되어 나온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내 안에서 그것들이 멋진 케미스트리를 일으켜주길 바라는 기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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