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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6. 2015

3D 입체 화법




3D 입체 화법
(입체적인 말하기)



화법(畵法)으로 화법(話法)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가 그린 그림은 평면적이었다. 어린이들의 그림이란 게 으레 그렇듯 나무도 집도 사람도 자동차도 쥐포처럼 납작하게 스케치북에 누워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내 그림 속 사물들은 비로소 스케치북 위로 조금 튀어나왔다. 연필과 지우개를 부지런히 놀려가며 소묘란 걸 했는데 어떻게 해야 보이는 그대로를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납작한 그림보다는 튀어나온 그림이 더 보기 좋았다.  


처음 대화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납작한 그림처럼 말했다. 가령 ‘취미’라는 주제를 받으면 내 취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 한 5년쯤 지나니 비로소 나의 말들이 스케치북 위로 튀어나오는 그림처럼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단지 내 취미가 무엇인지 나열하는 게 아니라 취미라는 주제에 대해 입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 취미는 영화보기입니다. 얼마 전에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봤는데요. 굉장히 개성이 강한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이 누군지 모르고 봐도 영화가 끝나면 ‘류승완 작품이구나!’하고 알아챌 만큼 자기만의 스타일이 짙은 영화더군요. 제가 개성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취미 활동을 즐기다 보면 이렇듯 자신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취미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취미는 일과 다르게 누군가로부터 강요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죠. <베테랑>을 보며 나란 사람이 ‘개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고, 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문체에 좀 더 개성을 더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취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입체적인 말하기다. 단지 취미는 영화보기이고 어떠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로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평면적인 말하기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취미→영화→개성→자신을 아는 일→취미의 장점’으로 구성되는 이야기는 입체적인 전개방식이다. ‘취미’라는 평이한 주제를 말하더라도 이렇게 입체적으로 풀어간다면 그 속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입체적 화법(畵法)으로 소묘를 하듯, 어떤 주제에 대해 입체적 화법(話法)으로 접근하면 한 권의 책처럼 풍성한 말하기를 할 수 있다.


단, 입체적 화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삼천포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로 시작해 취미로 돌아와야 하는데 자칫 무리해서 입체성을 부여다보면 주제를 벗어날 수도 있다. 마지막에는 출발지로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초등학생의 평면 그림과 미대생의 소묘는 격이 다르듯, 평면적인 말과 입체적인 말은 품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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