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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5. 2015

진심만이 남았다




진심만이 남았다
: 어느 여배우의 인터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늘 외따로 있는 섬처럼 외로운 것은 그 속에 진심이 없는 탓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대화를 쏟아내면서도 늘 허전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속에 진심 어린 내용이 없는 탓이다.”

                                                                                                             - 이정하 <불쑥 너의 기억이> 中






영화기자로 일할 때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느 배우의 인터뷰가 가장 좋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이런저런 인터뷰를 머릿속에서 뒤적거려보고는 가장 진심이었고, 가장 솔직했으며, 가장 진정성 있었던 몇몇의 이름을 대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짠할 만큼 진실했던 인터뷰들이었다. 시간이 가고 결국 진심만이 마음속에 남은 셈이다.


나의 질문들은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간간이는 의도치 않게 인터뷰이의 상처를 건드리기도 했다. 그때가 바로 갈림길이 나누어지는 순간이다. 어떤 배우는 솔직함의 길을 택했고, 어떤 배우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솔직함을 걷는 인터뷰이들은 그 시간 동안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았으며 이미지 관리를 위한 자기검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그 자신이 울컥하며 너무 뜨거워질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진심이었다.


그런 몇몇의 인터뷰이 중 김호정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을 찍은 후 진행된 인터뷰였다. 사실 그렇게 황당했던 인터뷰는 처음이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자들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따끔하게 말하는 그녀 앞에서, 내가 감히 기자를 대표해 사과를 드려야 하는 건지, 난 그런 기자가 아니라고 해명을 해야 하는 건지 좀처럼 입장을 정할 수가 없었다.


“영화 잘 봤습니다. 직접 보니 노출신이 전혀 선정적인 쪽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기사들 을 보면 투병하는 신을 선정적인 장면인 것처럼 언급하더라고요?” 개인적인 감상평에 가까운 첫마디를 던진 건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워밍업 같은 거였다. “그러게요. 그렇더라고요” 정도의 답을 듣고 나면 곧바로 준비된 질문에 들어갈 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노출만 밝히는 기사에 울었다”며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성기노출, 전라노출이란 단어로 몰아가는 엄청난 양의 기사들을 보고 충격 받았어요. 영화 내용적인 기사들은 다 묻히고 ‘김호정 노출’만 포털 검색어에 오르내렸죠. 전 포르노를 찍은 게 아닌데...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그녀는 기자와 언론에 대한 자신의 소신도 거침없이 밝혔다. “기자는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지 않나요? 기본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죠. 배우가 연기에 대한 고민은 않고 스타성만 밝히면 안 되듯, 기자가 클릭수에만 혈안 돼 기사를 쓴다면 그건 기자가 아니잖아요. 자극적인 말에 따옴표를 붙인 제목들, 하이에나처럼 덤비는 언론에 많이 울었어요. 사실 기자회견 때만 해도 반응도 좋고 ‘모든 게 잘 되겠다’ 생각했는데 마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죠. 집에 도착해 불도 켜지 않고 멍하니 침대 위에 앉아 있었어요. 화장도 못 지우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냥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는 그녀의 눈에도, 듣는 나의 눈에도 살풋 슬픔이 어렸다. 나는 그때 그녀가 정말 고마웠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정말이지 그냥, 솔직한 심정을 말해준 자체가 고마웠다. 1시간의 인터뷰가 그에게는 많은 스케줄 중의 하나로, 나에겐 늘 있는 취재의 하나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진심을 말해줌으로써 내 마음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1시간이 되었다. 그것이 고마웠다. 그런 인터뷰는 시간의 먼지가 가라앉고 나서도 오롯이 진심만이 남는 따뜻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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