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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5. 2015

6번 정도의 유머




6번 정도의 유머
: 유머의 아주 간단한 법칙





단어와 단어가 조합돼 말이 만들어진다. 단어들도 짝이 있어서 왼쪽 발에 빨간 양말을 신으면 오른쪽 발에도 빨간 양말을 신어줘야 한다. 유머의 법칙은, 그래서 의외로 간단하다. 왼쪽 발에 빨간 양말을, 오른쪽 발에 파란 양말을 신으면 그게 유머다. 달리 표현하자면 ‘의외성’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의외성은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상황과 말 사이의 의외성도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여행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짐꾼 이승기가 누나들을 모시고 숙소를 찾고 있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예약한 숙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승기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어보며 몇 번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때 큰 누나 윤여정이 승기에게 다가와 물었다. “몇 번 타야 하니, 승기야?” 승기가 대답했다. “6번 정도요, 선생님” 여정은 놀라서 되물었다. “6번... 정도? 너 지금 6번 정도라고 했니?” 


6번 정도라니... 그럼 5번이나 7번을 타도된다는 말인 건지. 놀라기는 이승기가 더 놀랐다. 긴장을 한 탓인지 낯선 타국의 분위기에 벌써 취해버린 건지 짐꾼 승기는 본의 아닌 웃음을 선사하고는 허당임을 또 한 번 입증했다. 버스번호처럼 정확해야 하는 숫자 뒤에 ‘정도’라는 단어를 붙이는 의외성, 이 놀라운 부조화는 유머의 기본 원리를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다.     


단어들끼리의 의외성 외에, 상황과 말 사이의 의외성 역시 웃음을 유발한다. 방송인 김제동은 강연 전에 분위기를 예열할 때 유머를 종종 이용한다. “아이구, 많이들 찾아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저 뒤에... 자리가 없어서 통로 계단에 앉으신 분들. 네네... 거기요. (침묵).... 다음부터는 빨리빨리 다니세요. 늦게 오니까 몸이 고생하는 거예요.” 순간 터져나오는 웃음들. 훈훈한 위로의 말을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김제동은 꾸지람을 던지며 상황과 말 사이에 반전을 꾀했다. 소소하지만 임팩트 있는 유머다.  


완벽주의자들에겐 유머가 힘든 일이다. 왼발에 빨간 양말, 오른발에 파란 양말 신는 부조화를 참지 못한다. 완벽하려다 보면 말 한마디를 뱉을 때에도 자기검열이 심해진다. 좀 망가져도 괜찮다는 각오 없이 유머 있는 사람이 되긴 힘든 법이다. 둥글둥글한 성격의 사람들 중에 유머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털털함 덕분일 것이다. 이들은 때때로 짝짝이 양말 신기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지녔다. 


유머는 말의 꽃이고, 기적의 묘약이며, 비포장도로 위의 수레바퀴다. 숨 막히는 분위기를 유머 한마디로 깨뜨리는 사람은 전쟁터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는 휴머니스트처럼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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