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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Nov 28. 2018

카카오 크리에이터스데이 2018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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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력. 

이 짧은 단어에서 모든 게 시작됐다. 


내게 글력이란 두 글자는 '옜다' 하고 툭 던져진 선물 같기도 했고, 미친 듯이 엉켜있는 금목걸이 같기도 했다. 실처럼 가늘디가는 줄이 제멋대로 꼬여있는데 이걸 풀고 있자니 미치겠고, 이걸 안 풀고 놔두자니 더 미칠 것 같은 기분. 몇 날 며칠 걸려서 무언가의 매듭을 풀어본 사람은 그 기분을 알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것이 무려 금목걸이란 걸 잘 알고 있었고, 풀었을 때 목 위에서 빛날 선물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달 동안 '글력'이란 두 글자를 풀고 또 풀었다.


카카오 크리에이터스데이 2018


브런치, 다음웹툰, 카카오 이모티콘, 카카오페이지. 이렇게 총 나흘간 진행되는 '카카오 크리에이터스데이 2018' 컨퍼런스. 그중 첫째 날을 맡은 브런치 편에서 글력이란 주제로 이야기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건, 그러니까 두 달 전쯤이다. 처음 제안받았을 땐 '나는 여기 낄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행사 당일이었던 11월 27일 화요일까지도 그 생각은 여전했지만 첫 발표자로 나선 요조님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고백해준 덕에 조금 위안이 됐다. 역시 고백의 힘이란.   


    

현수막 이미지 by. 카카오



그런저런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컨퍼런스를 마음껏 즐겼다. 내가 제일 신났을 거다. 다섯 작가로부터 글의 힘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니! 아마 연사가 아니었다면 분명 참가자로 신청했을 거다. 행사 공간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건물 안팎의 사진부터 찍었다. 행사장 외관에서부터 카카오스러운 디자인적(?)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마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 컨퍼런스가 되게 아기자기하면서도 크고 공이 많이 들어간 행사란 걸 알게 됐다. 1, 2층 곳곳엔 라이언을 필두로 한 우리의 다정한 프렌즈들이 참가자들을 반겼다. 이날 참석한 120여 명의 관객은 무려 7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주인공들이라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당사자들의 표정엔 해낸 자의 보람 같은 게 은근히 피어나는 듯했다.





내가 신나서 즐긴 것은 공간이 주는 기쁨과 더불어 다른 연사들의 이야기였다. 먼저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가 키노트 연사로 나서서 콘텐츠의 힘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공식석상에서 6개월만의 발언이라고 하니 기자들의 열정 타이핑도 당연해보였다. '매거진 B'의 발행인이기도 한 조수용 대표는 매거진이란 형식이 갖는 힘과 이런 형식을 띤 브런치의 힘, 그리고 전반적인 글의 힘에 관해 이야기했다. 디자이너 출신답게 콘텐츠를 담는 그릇의 형태, 즉 '형식'의 가치에 대한 인사이트를 드러내보였다. 이어 요조 작가님의 한 사람을 위한 편지 이야기, 김민섭 작가님의 노동의 삶을 몸소 살아내는 글력 이야기가 이어졌다. 울림이 있었다. 두 분 이야기를 뒤에서 들으면서, 타인에 대한 내 사랑의 부족함을 다시 또 자각했다. 대기실에서 연사분들과 인사 나눌 때 김민섭 작가님이 건넨 명함의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발표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타인이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살고 있고, 그 마음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겨내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장강명 작가님은, 무려 장강명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다음 발표 순서가 나인지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강백수 작가의 이야기도 울림이 있었다. 특히 노래 두 곡을 들려줬을 때 가사에서 오는 뭉클함이 여운으로 남았다.      





나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는 이야기. 내가 나로 살고 있지 못했을 때,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 이르렀을 때 미치도록 글이 쓰고 싶었는데 그때의 이야기부터 풀었다. 쓰기의 어떤 메커니즘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나로서 살고 있단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지. 그렇게 시작해 '어떻게' 쓸지에 관한 방법론적인 내용을 꺼내놓았다. 사실 20분이란 짧은 발표시간 동안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방법론적 이야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준비한 이유는 글쓰기에 관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분도 계실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알 도리는 없지만 한 명에게 도움이 됐어도 나의 두 달간의 금목걸이 풀기는 성공인 것 같다.        



나의 발표타임/ by. sguahk(왼), 록담님(오)



카카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


이번에 크리에이터스 데이에 참여하면서 카카오와 브런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2015년 9월에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그 후로 '삶의 결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브런치를 통해 신나는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책을 냈고 강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가 아닌 작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카카오 브런치가 아마 육체를 가진 인간이었다면 나는 두 손을 부여잡고 정말 고맙다고 말했을 거다. 참 감사하다.


카카오와의 신나는 일들을 돌이켜보면 '카카오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법 큰 자리를 차지한다. 브런치 작가 인터뷰, 티타임, 카카오클래스 in JEJU 강연, 그리고 올해 출범한 사회공헌재단 '카카오 임팩트'가 주최한 크리에이터스데이 강연 등을 하면서 그때마다 카카오 직원분들과 여러 차례 미팅을 했다. 그때마다 시야를 넓히고 배움을 얻었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지켜보면서 느낀 가장 큰 포인트는 '섬세함'이었다. 강연 하나를 맡길 때도 이들은 꼭 사전미팅을 했다. 그때그때 다른 직원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내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이 있었다. 브런치의 불편한 점이나 개선돼야 할 점이 무엇일지.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이것만을 묻기 위해 티타임을 마련하기도 했다.


카카오 사람들은 브런치 등의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여하고 문화를 리드하는 일을 했다. 카카오톡이란 걸 내놓음으로써 문자 생활에서 카카오톡 생활로 전반적 삶의 패턴을 바꿔놓은 것처럼 그런 시도를 여러방면으로 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브런치였다. 짧은 글, 아니 짧다 못해 아예 사진위주로 향해 가던 콘텐츠 플랫폼 생태계에서 왜 하필 긴 글을 위한 브런치를 발명했는지, 무모함의 상징이었던 브런치를 키워나가면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 무언지 등을 들을 수 있었다. 


브런치는 작가로 활동하는 이용자들에겐 '쓰는 삶'을 주었고, 독자들에겐 '긴 글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에 앞서 '작가'라는 정체성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소중한 포인트다. "너는 '쓰는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의 부여. 차마 간지러워서 스스로 하지 못했던 걸 뜬금없는 카카오 사람들이 나서서 해줄 줄이야. 그들이 나를 작가라고 자꾸 불러줘서 얼떨결에 김춘수의 꽃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12월부턴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는 강연명과 동명의 글을 연재하려 한다. 크리에이터스 데이에서 발표한 내용을 풀어쓴 건데, 아마도 최근 카카오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아닌가 싶다. 어느 날 갑자기 '글력'이란 두 글자를 던져준 덕분에 오랫동안 써야지 써야지 했던 걸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2015년이나 지금이나 브런치는 써야지 써야지 하는 나의 길고 긴 심지에 불을 당겨준다. 폭탄은 불이 붙어야 터지는 거였다. 지난 두 달 동안 써온 것을 더 쓰고 다듬어서 '말하기 책 하나, 글쓰기 책 하나'라는 아주 오랜 프로젝트의 반쪽을 마저 해내 볼 생각이다. 이것 또한 브런치에서 해볼 생각이다.                 

     


브런치편 컨퍼런스를 기획한 록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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