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열심히 효도하는 '25살 김혜자',
그 모습이 유독 짠한 까닭
[TV 리뷰]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너무 애틋해."
혜자(한지민, 김혜자 분)가 한밤포차에서 자신에게, 그리고 준하(남주혁 분)에게 했던 말이다.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보고 있으면 혜자가 울면서 했던 그 말을 똑같이 뱉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애틋해, 너무 애틋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는 요즘 월요일과 화요일에 김혜자와 함께 시간을 잃어버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따라 시간이란 게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타임슬립 류의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짠한 건 처음이다.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다니! 정말 애틋한 건 시간이었다.
특히 2화에서 아버지를 살리려고 수없이 시계를 돌리며 달리고 넘어지면서 분투하는 혜자를 보면서 너무 애처로웠다. 처음엔 25살 혜자가 70대로 늙어버려서, 혜자가 너무 불쌍해서 이렇게 맘이 아픈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애틋해하는 건 나의 시간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나의 지난 시간들이 자꾸 머릿속을 스쳐간다. 내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 텐데 싶은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지금 나한테 주어진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눈물이 났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내 주머니에 있을 땐 모르다가 잃어버리면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만약 가족을 잃어버렸다가 찾았을 때는? 그 심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잃어버린 게 시간이라면 어떨까.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시간, 젊은 몸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햇빛 아래서 웃을 수 있는 내 인생의 시간을 1분 1초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의지가 솟아남을 느꼈다.
나는 요즘 <눈이 부시게>를 보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기분이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자각하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달아나고 있는 시간을 더 붙잡게 되고 더 끌어안게 된다. 이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잃어버릴지도 모를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 되찾고 있다.
늙는다는 것
이제는 진짜 김혜자가 한지민으로 보인다. 말투, 걸음걸이, 눈빛, 손동작, 표정 모든 게 한지민이다. 특히 오빠 영수(손호준 분)를 대할 때 보면 한지민이 확실하다. 이렇게나 한 몸, 한 영혼 같은 연기라니! 김혜자의 열연 때문에 그녀가 갑자기 늙어버린 한지민이란 걸 믿게 되고, 그러니까 더 서글펐다. 늙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내가 직접 체험하는 기분이랄까.
이 드라마는 늙음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TV를 틀면 나오는 광고들, 그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인자함과 지혜로움을 지닌 여유로운 어르신들이지만 사실 현실에서 늙음이란 건 그렇지 못하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아무튼 내 주변의 늙음은 대체로 가난하고 외롭고 아프고 소외된 것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는 있는 대로의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홍보관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즐겁게 노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그들이 즐거워보여서 더 외로워보였다. 진짜 외로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외로움을 못 견디겠어서 내키지 않는 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홍보관 어르신들의 마음도 알 것이다. 그들이 홍보관에 가는 건 즐겁고 싶어서가 아니라 외롭고 싶지 않아서다. 그럴 때 자신이 가장 불쌍해지는 걸 알면서도 나갈 수밖에 없는 것, 그런 게 안쓰러운 것이다. 외롭지 않은 대가로 물건을 사야하는 걸 알면서도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봉고차를 타고 매일 그곳으로 출근한다.
혜자가 홍보관에서 만난 프라하 할머니의 심정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모습은, 안 그래도 짠한 혜자가 더 짠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젊음을 통째로 잃었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살아가는 혜자의 모습이 너무 예뻤기 때문에 짠했다.
"그래 이 맛이야." 목소리 녹음으로 돈을 벌어 엄마 고무장갑을 사고,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빠를 위해서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고, 철딱서니 영수에게 돈을 모아 빔 프로젝터를 사주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슬프다. 안 그래도 효녀였던 혜자가 부쩍 더 열심히 효도하는 마음의 바탕에는 죽음이란 게 깔려있어서다.
문득 <미쓰백>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한지민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다. 버림받고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온 미쓰백의 인생은 사실 영화의 초반까지는 아무런 쓸모도, 의미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가 한 아이를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놓았을 때 미쓰백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미쓰백의 삶과 죽음은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처럼, 번뇌 끝에 이제는 늙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성큼성큼 다가가는 하루를 살아내는 혜자가 가족을 위해, 홍보관의 외로운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자기 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짓 같아서 애틋했다. 혜자는 연대와 사랑이라는 답으로 본능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듯했다.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 늙어버린다는 것. 그것 말고도 이 드라마는 애틋한 것 투성이다. 진창 속에서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준하의 삶도 애틋하고, 혜자 엄마도, 아빠도 너무 애틋하다. 1화에선 아나운서가 되려고 해도 벽을 넘지 못하는 혜자를 보면서 안타까웠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공감할 만한 아픔과 따뜻함이 혜자와 준하를 둘러싼 사람들을 통해 솔직하게 투영돼 있다.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린다.
기사입력 19.03.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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