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엉덩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울다가 웃겠습니다

망각

by 손화신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03. 망각_ 내 엉덩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울다가 웃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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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나는 진짜 이상한 어린이였다. 1교시 때 울던 친구가 2교시 때 세상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아침에 속상한 일이 생겨 울었다면 밤까지 그 감정톤을 유지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친구도 진짜 이해 안 됐다. 같이 배꼽이 빠져라 뒹굴며 웃었는데 배꼽 잡느라 구부린 허리를 펴고 친구를 돌아봤더니 정색하고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공부모드로 전환한 거였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난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왜 또래 친구들처럼 어린이답게 망각에 능하지 못했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 지금 나는 애써 '망각'을 훈련하고 있다. 어린이 때도 잘 하지 못한 망각을 지금와서 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망각만큼 좋은 약은 없다는 걸 살아가며 알게 됐기 때문에 이 연습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 그 친구들이 옳았다. 1분 전에는 슬퍼서 울었지만 지금은 기뻐서 웃는 것, 그럴 수 있는 거다.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바뀌었다면 지금 마음이 느끼는 대로 나를 맡기고서 '변해도' 되는 것임을 이제는 잘 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중에 '초심'이란 곡이 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가사겠거니 하고 들었는데 "초심 따위 개나 줘 버리"란다.


"초심을 잃지 말라/ 말씀하시네/ 모두가 입을 모아/ 말씀하시네/ 하지만 사실 나는/ 기억이 안 나/ 옛날에 내가 어떤/ 놈이었는지/ 나는 옛날이랑은 다른 사람/ 어떻게 맨날 맨날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말투 똑같은 표정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가 있겠어" (장기하와 얼굴들, <mono> '초심')


나는 어떤 놈이다, 이렇게 정해놓고 그것을 지키려는 것. 그에 맞게 행동하고 말하려는 것. 그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 자신에 관해 잘 안다는 것과 '나는 어떤 사람이다' 하고 규정짓는 건 다른 문제다. 이것을 헷갈리면서 나의 혼란은 시작됐다. 어른이 되어 나를 돌아봤을 때 어릴 때와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누군지 정해놓으려는 습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는 외향적이기 보단 내향적인 사람이야, 나는 좌뇌보다 우뇌가 더 발달한 사람이야... 이런 것들이 나를 가두었지만 내가 갇혀있단 걸 알지 못했다.


감정도 그렇다.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지금의 마음에 충실한 게 최선인 것처럼, 나의 지금 감정에 충실한 게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자꾸 자신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가지만 어쩌면 생은 우리가 천방지축으로 뛰어도 되는 넓은 초원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어쩐지 이 사회는 초심을 강요하는 것 같다. 아이가 뽀로로 인형을 갖고 놀다가 내팽겨치고 피카츄 인형에 뽀뽀를 퍼부어도 별로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지만 어른이 그러면 비난한다. 사람이 줏대가 없다느니 무게가 없다느니 흉을 본다.


내 감정에 충실하게 이 순간을 살아야 행복하지만,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몇 분 전의 감정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습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망각하지 못한다는 것, 그건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형벌이다. 나를 향해 빛나게 웃어주던 연인의 표정을 망각한다면 그건 슬픈 일이겠지만, 내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들은 망각하지 못하고 계속 기억하는 건 더 슬픈 일이다. 직장 상사가 심한 말을 했을 때 그걸 망각하지 못하고 밤까지 마음 무겁게 지내면 내 하루는 날아가버린다. 이럴 때 난 제일 기분 나쁘다. 타인의 무례하고 불친절한 한 마디, 카톡을 읽고 씹어버리는 비정함 같은 자잘한 상처들에 얼룩진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오래 마음에 담아둘 때. 그런 내가 너무 밉다. 망각해버리자고 되뇌지만 그게 잘 안 돼서 내 소중한 시간들을 훼손당할 때, 그런 날 화가 난다.


내가 망각을 연습하는 이유다. 지금, 나로서, 혼자 머물기 위해. 나로서 온전해지기 위해. 기분 상하는 일이 있든지 말든지 그건 거기 저대로 있으라고 내버려둘 일이다. 나는 여기 내 마음의 가운데서 나 홀로 홀가분하게 있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다.


망각하는 자에게만 '지금 이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슬프다면 조금 전에 티없이 웃던 나를 망각하고 울어도 괜찮다. 그렇게 하는 당신은 사회가 말하는 것처럼 '미친 사람'이 아니고 단지 어린이 같이 현재에 충실한 사람인 거니까.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털난다는 이야기는 초심이랑 묶어서 개나 줘버릴 테다.





목차_

01. 프롤로그_ 저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습니다

02. 주체_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03. 망각_ 내 엉덩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울다가 웃겠습니다

04. 하루_ 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05. 가치_ 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06. 자유_ 오늘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자랑 좀 하겠습니다

07. 사랑_ 용돈은 감사합니다만 종이접기에 쓰겠습니다

08. 고통_ 나는 갑자기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뒤돌아있겠습니다

09. 단순_ 걱정은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모두 줘버렸습니다

10. 재미_ 이 놀이는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11. 당당_ 내가 제일 힘도 세고 밥도 많이 먹고, 천재입니다

12. 초월_ 죄책감은 강아지 옆에 있던 길냥이에게 줘버렸습니다

13. 타인_ 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14. 상상_ 수수께끼를 맞히면 피카츄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15. 충만_ 혹등고래 앞에서 저는 조금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16. 에필로그_ 백 투 더 퓨처, 다시 어린이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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