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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솔직해지다

글쓰기와 '나다워진다는 것'의 정의

by 손화신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2. 나다워진다는 것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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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신에게 솔직해지다


나다워진다는 것의 두 번째 정의는 자신에게 솔직해짐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자기를 미화하지도 않고 비하하지도 않고 생긴 그대로 보는 것. 글을 쓰는 행위는 정직하고자 하는 의지다.


정직함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글쓰기는 그 용기를 북돋운다. 씀으로써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보이지 않던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허영심, 이기심, 비겁함, 나약함...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는 이런 더러운 것들을 발견하고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지점이 내가 변할 수 있는 출발선이었다.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 순간이 내가 용기를 내야하는 타이밍이었다.


나의 경우, 글을 쓰고 나서 나를 덜 속이게 됐다.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한 멀리하게 됐다. 방금 내 행동이 허영심에서 나왔구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피하려는 두려움에서 나왔구나 하는 식으로 알아차리는 일이 많아졌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많아지자 ‘잘한 일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식의 꾸미기도 조금씩 줄여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카페에 앉아있는데 조금 춥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이 열려있다. 그런데 그 창문을 선뜻 닫지 못하고 망설인다. 카페의 사람들을 둘러보니 전혀 춥지 않다는 옷차림과 표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탓이라고 혼잣말하고는 결국 문을 닫지 않고 추운 대로 앉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같으면 ‘내가 너무 배려심이 많아서 그래’ 하고 내 행동을 미화시켰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용기 없는 인간, 그냥 남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사는 인간이야."


고장난 물건을 고치려면 그 물건이 뭔가 잘못돼 있단 걸 먼저 알아야 한다. 알아야 고치니까 말이다. 자신의 못난 행동을 모르는 척 어물쩍 넘어가는 대신 마음껏 자신을 혐오하고 자학하고 조롱하는 편이 낫다. 괜찮아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발적으로 반성문을 쓰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이 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김수영의 자기혐오다. 큰 것에는 분노하지 못하면서 오십 원짜리 갈비에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주인년한테 욕하는 자신을 역겨워하는 그 고백은, 이제는 그렇게 작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고장난 나를 고치려는 의지다.


정직하지 못한 글을 썼을 때 자기가 제일 먼저 안다. 그 글이 울림이 없다는 것을 자기가 가장 잘 안다. 나의 그림자를 남들이 보지 못하게 꽁꽁 감추고 살 때 공허해지는 건 자기 자신이다. 자기 고백의 글은 행동의 개시가 되고, 진짜 나에게 이르는 통로가 된다. 어쩌면 인지치료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이 행동이 무엇인지,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인지한다면 그것을 고칠 수도 있다.


남을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 자신에 관해 말할 때 미화 없이 쿨하게 말하는 사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디스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는 이상한 매력을 느낀다. 그들의 강함을 질투한다.


호들갑 없이 담담하게, 무엇보다 솔직하게, 그렇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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