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나다워진다는 것'의 정의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2. 나다워진다는 것의 정의
#3. 타인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다
나다워진다는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과 더불어 타인에게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도 솔직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나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꾸미지 않기. 연기하지 않기. 원래의 나로서 당당하기. 자신을 사랑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한 잡지 인터뷰를 보는데 어떤 여가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남들한테 다가갈 때도 솔직하게 다가가는 진심인 것 같다”고 답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남들한테 다가갈 때의 태도에 관해 말하는 건 동문서답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대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곱씹어 보니 그녀의 말에는 '나를 사랑하는 것'의 의미가 통찰력 있게 담겨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타인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은 자신을 사랑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때 타인 앞에서 자꾸 나를 꾸미게 된다. 그러니 남들에게 솔직하게 다가간다는 건 결국 내가 나에게 사랑받고 있단 증거다.
무엇이 성공한 삶인지, 성공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영국의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이 한 말이 있다. ‘나다움’, ‘나답게 사는 것’에 눈을 뜨게 해준 나침반 같은 틸다 스윈튼의 강력한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자신을 문밖에 세워두지 말 것!”
“당신의 마음이 열려있고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자기 자신을 보살필 수 있다 느끼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필요도 없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 자신을 더 이상 문밖에 세워둘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진정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 tvN <피플 인사이드> 378회, 틸다 스윈튼
일을 하면서 배우나 가수의 인터뷰를 종종 하게 되는데 그 인터뷰이에게 매력을 느끼는 기준은 하나였다. 솔직한 사람인가 아닌가. 인터뷰이가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좋아진다. 팬이 아니었는데 그 인터뷰를 기점으로 그때부터 팬이 된 경우가 몇 번 있다. 인터뷰란 걸 해오면서 솔직함이라는 가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됐다.
누구의 인터뷰가 가장 좋았는지 주변에서 자주 물어온다. 그럴 땐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비즈니스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를 나눴다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준 인터뷰이의 이름을 댄다. 반대로 어떤 인터뷰이가 가장 별로였는지 물을 때면 자동응답기처럼 형식적인 대답을 했던 이를 말한다. 기사가 와전되어 나갈 것을 염려해서인지 준비된 멘트를 자판기처럼 꺼내놓을 때, 기계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솔직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막 데뷔한 가수에게 데뷔 소감을 물었을 때 “이렇게 데뷔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답하는 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 아닐까.
Q. 데뷔한 기분이 어떠신지요?
A.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이걸 기사로 받아쓰는 게 의미가 있을지 그럴 때마다 갸우뚱거린다. 질문자가 던진 건 말하자면 “데뷔해서 기쁠텐데 그 기쁜 심정을 자세히 말해달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어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지금까지 연습생으로 지냈던 게 생각나서 잠이 잘 오지 않더라. 따뜻한 차 한 잔 끓여 마시고 겨우 잠들었다”고 대답한 신인가수의 소감은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마음에 남았다. 꾸미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는 것만으로 타인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단 걸 느꼈다.
글도 똑같지 않나 싶다. 콜라 버튼을 누르면 콜라가 나오는 자판기 같은 글을 쓸 바에는 안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기에 좋은 나, 타인이 듣고 싶은 대답을 꺼내놓는 내가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한 나를 타인에게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다. 자판기의 캔커피가 아니라 바리스타가 내려 풍미가 배인 스페셜티 커피 같은 글. 말과 글과 행동에서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문 안으로 들어온 나로서 성공한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건 하나의 목표 같은 거다. 문 안으로 들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