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뒤돌아있겠습니다

고통

by 손화신




매거진 < 어른, 안 하겠습니다 >


08. 고통_ 나는 갑자기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뒤돌아있겠습니다




애들이 뭘 알겠어. 어른들이 어린이를 무시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어른들이 겪고 느끼는 것에 비해 어린이가 경험하는 세상은 장난감처럼 작고 아기자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그러니까 어른들의 생각이다. 나의 경우, 어린아이도 똑같은 인간(?)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는데 그건 어린이가 '고통'의 문제 앞에 섰을 때다. 어린이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자주 서글프게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태어남과 동시에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건 없다. 수레바퀴의 구름은 너무도 자명하고 공평하고 냉혹하여 속도를 늦추는 법도 진로를 변경하는 일도 없다. 태어나자마자 갓난아기는 운다. 감은 눈으로 스며드는 날카로운 형광등의 빛과 문틈 사이로 미세하게 파고드는 바깥바람의 서늘함, 너무 시끄러운 사람들의 목소리에 놀라서 고통받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고통은 연속된다. 기저귀가 찝찝하고 목이 마르고 등이 가려워서 고통스럽고 그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또 고통받는다. 그런 삶 속에서 사소한 풍경에 자주 웃기도 한다.


조금 자라면 육체의 고통에 더해 마음의 고통, 그 세계로 진입한다. 더 넓고 답이 없는 세계다. 엄마가 동생에게 사탕 하나를 더 줬을 때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느끼는 외로움을 그 작은 마음으로 받아내고, 유치원에서 친구가 나보다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할 때 심장을 베인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어른이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고, 강도 역시 결코 약하지 않다. 이 점이 특히 서글프다. 어린이는 아직 작고 여린데 왜 그들이 감내하는 고통은 '인간의 것' 그대로여야 하는지. 왜 소아병동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머물러야 하며, 어느 땅에선 굶어 죽는 고통을 맑은 눈동자의 아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건지.


어릴 때 나는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신기하게 사라졌지만 초등학교 때는 천식이 나를 따라다녔다. 숨이 모자란 고통.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내가 겪은 고통은 지금의 고통보다 훨씬 무거웠다. 옆에 있는 엄마가 느끼는 '타인의 고통'은 내 것과 결코 똑같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자각은,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고통까지 덤으로 주었다.


8살짜리 아역배우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연기지만, 그 아이가 울 때 더 검어진 눈동자와 찌그러진 얼굴의 근육들과 흔들리는 목소리가 게워내는 슬픔을 보았다. 아이가 느껴 표현하는 그 마음의 고통은 어른들의 것만큼 시리고 웅장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우는 연기할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아이는 엄마가 아픈 것을 생각했고, 어떨 때는 엄마가 어디에 멀리 가서 며칠 동안 헤어졌을 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도 마음속에 '간직된' 아픔이 있다는 게, 그 작은 삶을 살아가면서 지니고 다니는 지난 고통의 조각들이 있다는 게 또 한 번 인간의 수레바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어린이를 더 나은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건 그들이 어른보다 순수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내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더 고되게 견뎌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고통을 경험하는 자세는, 그러나 어른의 자세와 조금 다른 듯했다. 그들은 요령 피우지 않는다. 고통을 외면하려 하지 않고 경감해보고자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고스란히 받아낸다. 지난여름에 여자아이를 키우는 부산의 친구 집에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놀러 간 적이 있다. 4살 꼬마들이다. 그런데 한껏 신나서, 초대된 집에 들어간 남자아이가 들어가자마자 벽의 모서리로 혼자 가더니 뒤돌아 쭈그려 앉아있었다. 오래도록 그러고 있었다. 뒤통수만 봐도 표정은 시무룩했다. 아이의 엄마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집에서도 가끔 저런다"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대화를 나누고서 돌아온 친구에게 물었다. 왜? 왜 그러는 거래? 친구는 아이와의 대화에 근거하여 추측하길, 지난번에 엄마가 일찍 온다고 약속해놓고 늦게 온 날 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슬펐던 게 방금 현관문을 지나오면서 생각난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갑자기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슬퍼하는 중이었다.


슬플 때 즉각 슬퍼하는 것. 삶의 괴로움을 나타나는 그대로 받아내는, 이토록 정직한 태도라니. 어쩌면 이것이 고통 앞에 선 인간의 유일한 대처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우리와 똑같은 질량의 고통을 짊어지고도 쓰러지지 않는 건 그 정직성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슬플 때 즉시 슬퍼할 만한 세상이 못 된다. 일을 하다가 내게 상처 준 사람의 모진 한 마디가 불현듯 떠오르지만 컴퓨터를 끄고 모서리 벽에 가서 슬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슬픔을 해안절벽의 퇴적층처럼 쌓고 쌓으며 산다. 습관이 된 슬픔에의 외면은 슬픔을 더 큰 고통으로 키운다.


많이 아팠던 사람은 덜 고통받는 모든 인간의 스승이다. 얼마 전에 한 가수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만큼 크게 아팠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길고 컴컴한 죽음의 터널을 몇 년 동안 지나오면서 그는 고통을 대하는 자신만의 자세를 갖게 됐는데, 들어보니 그 자세란 게 별 거 없었다. 그가 말했다.


"두려운 것도 피할 필요가 없단 걸 알았다. 내가 공포를 안고 있는데 '나는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을 거야' 하면 오히려 큰 압력이 된다. 충분히 두려워하는 것이 낫다."


그는 고독과 절망과 외로움과 공포를 처음에 피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그것들을 수용하면서 고통들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됐고, 그것을 생의 감각으로써 받아들이면서 살아있음 안에서 충만해져갔다. 고통도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삶의 경험이기 때문에. 삶은 삶 자체로 그 안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는 고독과 절망과 외로움과 함께 '사랑'을 동시에 느꼈다고 털어놨다. 왜 인간이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은지 그때 나는 알게 됐다.


어린이에게는 고통조차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경험'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은 용사가 되고 그렇게 자란다. 어린이가 즐거움만으로 큰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대를 지나는 누군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자기는 얼른 30대가 되고 싶다면서 그 이유로 "20대는 인간관계에서든 일에서든 너무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고통스러운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30대도 똑같은 고통을 느끼겠지만 그것들이 20대처럼 완전 처음은 아닐 테니 더 견딜만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어린아이가 느끼는 고통을 떠올려봤다.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린이가 느끼는 고통은 그야말로 모든 게 날것이고 처음이라서 더 무겁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처음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걸 온몸으로 받아내며 삶 자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이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내버려 두듯이"

- 이문세, '옛사랑' 가사 중


이영훈이 써내려간 이 노랫말처럼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오면 (비록 남들 모르게지만) 울기도 하고, 살아가다 갑자기 그리운 것이 생각나면 밀쳐버리려고 애쓰는 대신 그리운대로 그리워하는 것. 이런 것이 어린이가 보여준 것처럼, 생 안에 스민 고통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목차_

01. 프롤로그_ 저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습니다

02. 주체_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03. 망각_ 내 엉덩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울다가 웃겠습니다

04. 하루_ 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05. 가치_ 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06. 자유_ 오늘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자랑 좀 하겠습니다

07. 사랑_ 용돈은 감사합니다만 종이접기에 쓰겠습니다

08. 고통_ 나는 갑자기 슬픈 기억이 떠올라서 뒤돌아있겠습니다

09. 단순_ 걱정은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모두 줘버렸습니다

10. 재미_ 이 놀이는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11. 당당_ 내가 제일 힘도 세고 밥도 많이 먹고, 천재입니다

12. 초월_ 죄책감은 강아지 옆에 있던 길냥이에게 줘버렸습니다

13. 타인_ 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14. 상상_ 수수께끼를 맞히면 피카츄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15. 충만_ 혹등고래 앞에서 저는 조금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16. 에필로그_ 백 투 더 퓨처, 다시 어린이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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