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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4. 2015

자기검열의 두 종류

삼사일언 하되 이미지 관리 않기




#6. 자기검열의 두 종류
: 삼사일언 하되 이미지 관리 않기




‘이 말을 하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 말을 내뱉기 전 어느 정도의 자기 검열은 누구나 한다. 적당한 자기 검열은 말의 수위를 조절해 말실수를 줄여주는 순기능을 하지만 지나친 자기 검열은 말의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방금 스테이크를 구워놓고 행여나 탄 부분은 없는지 요리조리 살피고 검사하다가는 스테이크가 차갑게 식어버린다. 막 구워 내어놓는 스테이크가 맛있듯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때 그때 솔직히 꺼내놓는 말은 맛있다.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머리로 과도하게 계산하지 말 일이이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을 일일이 검열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자신감 없는 이의 것이다. 사실 아무리 신중하게 자신의 말을 검토하고 내뱉는다 해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대로, 자신의 그릇대로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당신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작가 손을 떠난 소설의 해설은 독자의 몫이듯, 당신 입술을 떠난 말은 이제 청자가 주인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까지 계산하려는 건 오만이다.  


연암 박지원의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임백호가 막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했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 짝씩 신으셨네요.” 하인의 말에 백호가 답했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결국 당신이 어떤 말을 하든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왼쪽 혹은 오른쪽)에서 당신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러니 자기검열하느라 힘 빼는 시간에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충실한 편이 낫다. 임백호처럼 한 쪽발에 가죽신을 한 쪽발에 나막신을 신고도 개의치 않는 털털함, 타인의 시선의 틀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 하지 않는 자신감은 보기만 해도 호방하지 않은가. 


자기검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 말했듯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한 검열, 하나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검열. 타인을 위한 자기 검열은 세 번 생각하고 말하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미덕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인생 덕목 9가지를 정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말(言)에 대한 것이었다. "1. 말(言):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김 추기경의 말씀은 타인을 위한 자기검열이다. 그것은 말의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검열이 아니라 에너지를 더하는 검열이다. 


헌데, 문득 궁금해서 말이다. 왜 김 추기경은 인생덕목 9가지 중 가장 첫 번째를 '말'로 정했을까. ‘기도’는 일곱 번째 덕목으로 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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