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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그곳/발리슛

by 손화신






cinnamon #. 굴


굴은 무너진다. 그러니 굴을 파지 말 것.




cinnamon #. 그곳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변화할 수도 변화하지 않을 수도 없다. 쫓기듯 산다. 말이 달리듯이 뛰긴 뛰는데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닌 곳을 향해서 뛰는 바람에 가고 싶은 곳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더 멀어지면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중에도 멀어지는 그곳을 힐끔힐끔 돌아본다. 그렇다고 가고 싶은 그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지도 못하다. 달리고 있지만 사실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 붙어있는 엉거주춤한 표정과 팔다리. 참 애매하고 어설프다.




cinnamon #. 발리슛


생각은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존재다. 괜찮은 것은 하나를 잡아 주머니에 넣고, 쓸모없는 건 공중에 떠다니는 그대로 발리슛으로 차버린다. 내가 발리슛을 더 잘 차면 이상한 붕붕이들을 다 무찌를 수 있을까. 미세먼지를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떠 있는 별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공중에서 붕붕거리는 존재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인 걸까. 나는 그것들을 자기들끼리 붕붕거리게 놔둘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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