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하우스 오브 프리츠 한센 부스는 건축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뭔가 특별하고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어 프리츠 한센 가구의 형태와 자재에서 전체적 곡선과 색상을 도출했다. (...) 나는 디테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층층의 앵글을 통해 프리츠 한센의 부스를 탐험하듯 즐기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다!"
- 산업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네이버 디자인 발췌
절대 속아선 안 되는 말이 한 끗 차이란 말이다. 한 끗 차이는 실은 하나만큼의 차이가 아니라 한없이 큰 차이란 말과 다르지 않으니까. 태풍에 앞선 나비의 날갯짓이 그리 연약한 게 아니었듯이.
예술은 늘 마지막 갈림길에서 삼류 예술을 가려낸다. 갈림길엔 이런 푯말이 서있다.
여기서부터 '디테일' -->
디테일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 난다고, 그리 생각한다. 디테일에서 남과 다른 한 끗의 내가 나오는데, 그게 안 나오면 그냥 그런 작품이 되는 거다. 이게 그거 같고 그게 이거 같은 작품. 디자인이든 글이든 노래든 춤이든 뭐든 간에. 우리가 어떤 디자이너의 작품을 좋아할 때 그건 디테일에서 느껴지는 한 끗의 작고 커다란 차이를 좋아하는 건데, 그 한 끗 안에 뭐가 있느냐면 바로 그 디자이너의 개성과 인간다움이 들어있는 것이다.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나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디자이너든 아티스트든 자신만의 스타일과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 빠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하고 흔한 디자인이 나올 뿐이다."
- 산업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네이버 디자인 발췌
요즘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빠져 있는데, 뭐 이렇다 할 근사한 이유는 없고 그냥 재밌어서 즐겨 읽는다.
그냥 재밌어서 즐겨 읽는데 그런데 왜 내가 그의 소설을 재미있어하는지 그건 좀 알고 싶었다. 전집을 하나씩 읽다 보면 어딘가 스토리가 비슷비슷한 느낌이 드는데도, 그럼에도 이야 이야 하면서 읽는 나는 왜 그런 것인가... 했더니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표현력에 깊이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소스케 부부가 도쿄로 올라왔을 때 고로쿠는 사실 단순한 어린애의 마음으로 오요네를 미워했다. 오뇨네도 소스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부는 해 앞에서 웃고 달 앞에서 생각하며 조용히 해를 보내고 또 맞았다. 올해도 이제 다 저물어가고 있었다."
- 나쓰메 소세키, <문> 191 페이지
'부부는 해 앞에서 웃고 달 앞에서 생각하며 조용히 해를 보내고 또 맞았다' 같은 문장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나는 잠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거 기가 막히는군! 고로쿠와 함께 있는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밝고 쿨하게 굴고, 밤에 자려고 누워선 마음 한편에 미뤄둔 시무룩한 감정에 젖는 부부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저 디테일! 문장으로서 무언가를 표현할 때 직설적으로 하기보단 저렇게 비유를 써서 섬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의 문장을 보면 다 떠나서 '문장 보는 재미'가 있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만화책을 볼 때 한 컷 한 컷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은 과정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리고... 글도 과정이라고 똑같이 생각하는 바다.
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되듯이 문장이 모여 글이 되니까. 문장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면, 한 문장 한 문장 읽는 맛이 쏠쏠한 글이라면, 나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읽고 나서 전체적인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해도 상관없고 이야기의 감동이 없다고 해도 뭐 괜찮다. 탐미주의자가 된 듯이 그저 문장가의 아름답고 묘한 문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시를 읽는 기분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데만 급급해서 직선적으로 풀어버리는 글은 재미없다. 문장 하나하나에, 뭐랄까, 상큼한 레모네이드를 마실 때면 올라가는 새끼손가락 같은 디테일이 있어야 재미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feat_도깨비)듯이 이런 문장도, 저런 문장도, 책 읽기 과정 안에서 마주치는 하나하나의 문장이 좋으면 전체 글도 사랑스러워진다.
그렇담 문장의 디테일이 당최 무어냐 묻는다면, 그건 사람마다 답이 분명 다를 거다. 내게 있어서 문장의 디테일이라 함은 앞서 말했듯 결국 비유의 문제다. 읽는 이의 머릿속에 시각적인 그림을 그려 넣는 것. 언어라는 관념적이고 두루뭉술한 뜬구름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바꿔놓는 작업이 한 문장 한 문장의 디테일을 살리는 일이다. 언어로써 글 속에서 그림을 그릴 때, 그 비유의 화풍을 통해서 글쓴이의 개성과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이런 거 말이다. 해 앞에서 웃고 달 앞에서 생각하며. 크으...
한 끗 차이가 이렇게나 무섭다.